옌리멍 "박쥐바이러스·2003년 사스와 유사…자연계에 없는 특성도"
전문가들 "'유전자 유사성=조작 증거' 단언 불가…자연상태서 발생가능"
[팩트체크] '중국연구소가 코로나19 제조' 논문 근거 충분?
임순현 기자 · 이율립 인턴기자 = 중국 출신 바이러스 학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코로나19)가 중국 우한바이러스연구소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제기해 논란이다.

옌리멍(Yan Li-Meng) 홍콩대 공중보건대학 박사 연구진은 지난 15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논문을 정보공유 플랫폼인 '제노도'(Zenodo)에 발표했다.

제목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자연진화보다는 수준 높은 연구소에서 조작됐음을 시사하는 게놈의 일반적이지 않은 특성과 가능한 조작 방법에 대한 상세 기술'이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SARS-CoV-2의 생물학적 특성은 자연발생이나 인수공통이라는 설명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SARS-CoV-2가 2015년과 2017년에 발견된 박쥐 바이러스와 염기서열이 유사한 점, 세포 침투 시 수용체와 결합하는 'RBD 도메인'이 2003년 사스바이러스(SARS-CoV-1)와 유사한 점, 스파이크 단백질 내 '퓨린분절부위'(furin-cleavage site)가 자연에서 발견되는 코로나바이러스와 다르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전 세계를 '코로나 팬데믹' 공포로 몰아넣은 SARS-CoV-2를 중국이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는 주장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이에 옌리멍 박사 연구진이 제기한 3가지 조작 증거가 사실에 부합하는지, 사실이라면 이를 근거로 중국 우한연구소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는 이 분야의 저명한 국내 전문가 5명으로부터 전화 인터뷰 등으로 의견을 청취했다.

◇ "박쥐바이러스·2003년 사스와 유사" 주장 사실이나 '제조' 근거론 부족
우선 SARS-CoV-2가 박쥐 바이러스 내지 2003년 사스바이러스와 유사하다는 옌리멍 박사 연구진의 주장은 사실에 부합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SARS-CoV-2가 기존에 발생한 이런 바이러스로부터 유래된 것이고, 이때문에 유전적으로 상당히 유사한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 전문가인 송대섭 고려대 약대 교수는 17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현상학적으로는 옌리멍 박사의 연구진이 논문에서 제기한 SARS-CoV-2의 특성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바이러스 유전자 전문가인 김태형 테라젠바이오 수석연구원도 "SARS-CoV-2는 SARS-CoV-1의 변종이기 때문에 2003년 사스바이러스와 유사한 것은 맞다"며 "SARS-CoV-1의 스파이크 단백질에 돌연변이가 여러 군데 발생하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SARS-CoV-2가 기존 바이러스와 유전적으로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해서 인위적으로 조작된 바이러스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유전적 유사성이 SARS-CoV-2 '인위적 제조설'에 결정적 근거가 되기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구조생물학자인 남궁석 SLMS 대표는 "SARS-CoV-2가 박쥐 바이러스와 비슷하긴 하지만 여태까지 발견된 바이러스 중에서 가장 닮은 것은 아니다"라며 "옌리멍 박사는 SARS-CoV-2보다 더 비슷한 바이러스는 실체가 불확실하다고 주장하지만 그 외에는 마땅한 근거를 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대섭 교수도 "옌리멍 박사가 제기한 SARS-CoV-2의 특성이 사실에 부합하더라도 이를 조작의 직접적 증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이러한 특성을 가진 바이러스는 굉장히 많다.

단지 박쥐 바이러스나 2003년의 사스바이러스와 유사하다는 특징만으로 SARS-CoV-2가 인위적으로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 비약"이라고 말했다.

[팩트체크] '중국연구소가 코로나19 제조' 논문 근거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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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계에 없는 퓨린분절부위?…전문가들 "자연상태서 발생 가능"
'SARS-CoV-2의 감염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퓨린분절부위에 자연상태서는 발생할 수 없는 특성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 연합뉴스의 취재에 응한 전문가들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옌리멍 박사는 SARS-CoV-2에는 단백질 분해효소인 퓨린에 의해 분절될 수 있는 4개의 아미노산 삽입 서열이 있는데 이것이 다른 코로나바이러스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특성이라는 이유를 '조작' 근거로 들었다.

자연상태서 결합할 가능성이 없는 두 종류의 바이러스를 인위적으로 조합해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특성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자연상태서도 얼마든지 다른 바이러스가 결합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돌연변이로 퓨린 분절 부위가 발생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유전학 권위자인 장혜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많은 학자들은 서로 다른 두 바이러스가 우연히 재조합돼 SARS-CoV-2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코로나바이러스는 세포 내에서 재조합이 매우 많이 일어나는 편이기 때문에 박쥐 같은 자연 숙주에서 전혀 다른 바이러스끼리 재조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형 수석연구원도 "이미 자연발생이 가능하다는 논문들이 많이 나온 상태라서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염기 서열에도 이미 엄청난 변이가 자연상태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퓨린분절부위는)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주장했다.

송대섭 교수도 "지난 8월 저명 학술지인 '네이처 메디슨'지(誌)에서 세계적인 유전학 대가들이 (퓨린분절부위와 같은) 돌연변이가 자연상태서 발생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낸 바 있다"고 지적했다.

자연상태서 발생한 퓨린분절부위를 가진 또 다른 바이러스가 이미 발견됐다는 지적도 있다.

남궁석 대표는 "박쥐에서 발견된 'RmYN02'라는 바이러스가 있는데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부위에 삽입 서열이 있는 것이 입증됐다"면서 "자연계에 있는 바이러스 중에 SARS-CoV-2와 유사한 것이 없다는 주장 자체가 이미 다 무너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 6개월이면 코로나19 '복제' 가능?…전문가들 회의적
'6개월이면 SARS-CoV-2 조작과정을 완전히 이행할 수 있다'는 옌리멍 박사의 주장에도 연합뉴스가 접촉한 전문가들은 회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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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 박사 연구진은 박쥐 바이러스에 2003년 사스바이러스의 인체세포 결합부위를 만드는 유전자를 삽입한 뒤 퓨린분절부위를 인위적으로 생성하는 과정을 거치면 6개월 안에 SARS-CoV-2와 동일한 바이러스를 조작할 수 있다고 논문에서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옌 박사의 방식은 이론상 가능할 수는 있어도, 현실적 개연성은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장혜식 교수는 "옌리멍 교수의 주장대로 중국 정부가 관여했다면 굳이 쉽고 빠른 방법을 두고 복잡할 뿐만 아니라 흔적을 잔뜩 남기는 방식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며 "그럴 바에야 그냥 자연계에서 수집한 바이러스를 그대로 퍼뜨리는 것이 훨씬 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대섭 교수도 "옌리멍 박사가 주장하는 방식대로 SARS-CoV-2와 동일한 바이러스를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옌 박사 연구진이 주장한 바이러스 인위 제조 방식은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작업이라는 평가도 있다.

남궁석 대표는 "생명공학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생명공학 업계 사람으로서 감사할 일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아직 그런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옌 박사 후속 논문 예고…설득력있는 추가 근거 제시할지 주목
그러나 이번 논문만으로 옌 박사 연구진의 주장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결론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이 조만간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새로운 논문을 추가 공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번 논문과 달리 추가 공개될 논문에는 결정적 증거가 포함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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