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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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고소 사건에서 수사기관의 무혐의 처분 및 법원의 무죄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고소인이 무고죄를 저질렀다고 단정지어선 안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고소인이 내린 ‘주관적 법률평가’가 잘못이라고 볼 수 있을지언정 그가 ‘허위사실’을 밝혔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제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무고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A씨는 2016년 11월 자신의 박사논문 지도교수 B씨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 혐의로 고소했다. B씨가 지위를 이용해 2014~2016년 14차례에 걸쳐 자신을 강간하고 한차례는 강간하려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2017년 5월 B씨에 대해 무혐의 처분(증거 불충분)을 내렸다. 그러자 B씨는 A씨를 무고 혐의로 고소했다.

1심은 A씨의 무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그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A씨가 B씨로부터 강간을 당했다는 시기를 전후해 A씨가 B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 등을 볼 때, A씨의 행동은 ‘강간 피해자’의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며 “오히려 A씨는 B씨의 부인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면하고, B씨와 내연관계였음을 감추기 위해 B씨를 고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씨로부터 ‘그루밍’을 당했다는 A씨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루밍 수법에 의한 성범죄는 주로 아동, 청소년 등 성적 주체성이 미숙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다”며 “A씨가 30대 성인에 고학력 여성이었던 점 등을 종합할 때 그루밍 수법에 의해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2심은 “A씨가 범행을 부인하며 전혀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고, 도리어 언론매체를 활용해 본인의 주장이 사실인 양 방송 등이 이뤄지게 해 B씨에게 추가적 피해를 가했다”며 A씨의 형량을 징역 1년으로 높였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고소장 등에서의 A씨의 기본 취지는 B씨를 만날 당시의 처지와 심리적 상태, B씨와 사이에 있었던 여러 일 등 나름의 근거를 밝히면서 B씨 사이의 성관계가 자유의사에 따른 것이 아니고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을 호소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A씨가 ‘허위사실’을 고소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또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A씨의 행동을 성폭력 피해자로서 전형적으로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라거나, A씨가 B씨와 서로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인혁/최예린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