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권 설정 잊은 집 주인, 보증금 5억 모두 줬다가 4억 대출까지 떠안아
법원 "세입자, 주인에게 대출 미상환 사실 알릴 의무 있다"
"전세대출 4억 숨기고 보증금 반환받으면 사기"…세입자 실형
세입자가 금융기관 대출로 전세보증금에 담보가 설정됐다는 사실을 집주인에게 알려주지 않은 채 보증금을 돌려받았다면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서울고법 형사5부(윤강열 장철익 김용하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나 합의하라는 의미에서 구속을 면했던 김씨는 이날 법정 구속됐다.

김씨는 2015년 전세보증금 5억원에 최모씨 소유의 서울 압구정동 아파트를 임차했다.

당시 김씨는 보험사 대출 4억원을 끼고 전세보증금을 마련했다.

최씨의 승낙 및 반환 확약을 거쳐 이 전세보증금 반환 채권에는 보험사의 질권(담보)이 설정됐다.

문제는 1년 6개월 뒤 김씨가 전세계약을 해지하고 최씨로부터 보증금 5억원을 받아가면서 생겼다.

김씨는 대출 4억원을 상환하지 않은 상태라는 사실을 최씨에게 알리지 않았다.

최씨는 질권을 설정해준 사실을 잊어버리고 보증금 5억원을 모두 김씨에게 돌려줬다.

이 경우 최씨가 질권자인 보험사의 동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보험사는 최씨에게 변제를 요구할 수 있다.

실제로 김씨가 반환받은 보증금을 대부분 선물옵션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자, 보험사는 최씨 아파트를 압류하고 반환 소송을 냈다.

소송에서 법원은 최씨가 보험사에 4억원과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씨 입장에서는 김씨에게 5억원을 반환하고도 또 보험사에게 4억원을 내주는 피해가 발생했다.

재판부는 이렇게 최씨에게 피해를 발생시킨 김씨의 행위가 형사상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으면서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은 사실을 최씨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며 "이를 알리지 않음으로써 최씨를 기망한 것으로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최씨는 김씨의 보증금 조달에 협조하기 위해 아무 대가 없이 일방적 의무만을 부담하는 질권 설정 승낙서 등을 작성해줬다"고 설명했다.

또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최씨는 대출이 이뤄진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김씨는 이를 상환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토대로 재판부는 "당사자의 개인적 신뢰를 기초로 한 법률관계를 맺은 김씨가 대출금을 갚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릴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착오에 빠진 임대인에게 5억원을 전액 돌려받은 후 채무를 전혀 변제하지 못해 임대인이 대신 부담하게 하는 손해를 입혀 죄질이 불량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다만 보험사에 대출 채무를 지속적으로 갚아나가 잔액이 1억9천여만원으로 줄어든 점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