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 의료진이 의과대학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8일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 의료진이 의과대학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체 불가능한 인력 수급 문제는 국가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턴 수급 부족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의사국가시험(국시) 거부 의대생에 더 이상 구제책이 없다고 단언한 보건복지부가 내년도 대형병원 의료공백에 대해 “관여할 바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손영래 복지부 대변인은 8일 <한경닷컴>과의 통화에서 “대형병원의 인턴 수급 부족 문제는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인턴은 고도의 전문가가 아니고 의료현장에서 실무적 역할을 담당해 대체불가능한 인력이 아니다. 병원의 단기적 인력 확충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에서 유입되는 환자 수가 많고 중증 환자 비중이 높은 대형병원에서 특히 인턴이 많이 필요한데, 공공의료기관이 아닌 병원이므로 알아서 대응해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온라인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온라인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수련의 400명' 의료공백 불가피…복지부 "병원이 해결할 문제"

8일 논란의 중심에 있던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이 예정대로 진행됐다. 전날 복지부에 따르면 국시 응시대상 3172명 중 14%(446명)만이 이번 의사 국가고시 시험에 응시할 예정이다. 이는 평년 대비 10분의 1 수준으로 역대 최저 수치다.

올해 국시를 통과해 내년부터 수련의로 현장에 투입될 인력 자체가 대폭 감소하다 보니 내년도 대규모 의료공백이 불가피할 전망. 올해 기준으로 서울대병원은 180명, 서울아산병원은 110명, 삼성서울병원은 100명, 연세세브란스병원은 92명, 가톨릭중앙의료원이 일괄적으로 선발한 서울성모병원은 248명의 인턴을 확보했다.

이번 국시에 응시하는 446명이 모두 통과돼 내년에 의료현장에 투입된다 해도, 당장 서울 대형병원들의 인턴 자리도 메꾸지 못한다. 이처럼 수도권 내 대규모 의료공백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도 복지부는 관할이 아니라며 발을 빼는 모양새다.

손영래 대변인은 “인턴 수급 부족은 병원 측이 알아서 해야 할 문제다. 향후 계획을 점검해 봐야겠지만, 향후 대학병원에서 환자 불편이 생긴다면 자체적으로 의사를 충원해야 한다”며 “한 해 정도는 일시적으로 그 일을 담당할 의사들을 충원하는 것이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특수한 분과들이기에 인력을 구하려 해도 구할 수 없다면 그때 국가에서 함께 대책을 논의할 문제”라며 “의사 확충에 있어 재정적 지원 필요성은 검토할 여지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병원 측에서 일차적 책임을 가지고 해결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제85회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일인 8일 오전 서울 광진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본관에서 응시생이 관계자들과 함께 시험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 실기시험 응시율은 14%에 그치면서 기존 1일 3회 실시하던 시험이 1회로 변경됐다. 사진=뉴스1
제85회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일인 8일 오전 서울 광진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본관에서 응시생이 관계자들과 함께 시험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 실기시험 응시율은 14%에 그치면서 기존 1일 3회 실시하던 시험이 1회로 변경됐다. 사진=뉴스1

대형병원 측 "의사 채용 등의 부담, 결국 환자의 불편으로"

대형병원 측은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인턴이 하는 일이 일반 의사와 같지 않으며, 상급종합병원의 대부분이 학교라는 점을 고려하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병원과 진료과마다 다르지만 인턴은 병동과 응급실, 당직 업무까지 커버하는 역할을 한다. 기본적 검진을 위한 채혈부터 사전진료, 병동 환자의 상태 변화 확인, 위험 감지 및 대응, 수술 경과 확인까지 전 진료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수적 업무를 맡는다.

A 대학병원 관계자는 “인턴 인원만큼 일반 의사를 뽑는 것은 부담이 있다. 이미 의사면허를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한시적으로 뽑는 것 자체도 어렵다"며 "채용 문제도 쉽지 않다. 만약 복지부에서 공지가 내려온다고 하더라도 일반 의사를 채용할 때 계약직으로 뽑을지, 정규직으로 뽑을지 등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반 의사가 인턴 자리를 완벽히 대체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는 “인턴의 역할과 레지던트, 교수의 역할은 다 다른데 한 그룹 자체가 빠지는 것이다. 처방권을 가진 인턴은 해당 업무와 함께 환자를 사전 진료하는 역할을 한다. 일반 의사가 이 같은 역할을 담당할 의지가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언급했다. A 대학병원 관계자는 "결국 모든 게 병원 부담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하더라도는 부담이 환자에게 전가되지 않을 것이란 보장도 없다. 참 난감하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는 해마다 1000명씩 수급되는 인턴의 역할을 1년만 한시적으로 담당할 일반 의사를 구하기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B 대학병원 관계자는 “인턴은 교육생 신분이라 일반 의사로 대체하는 것은 개념 자체가 다르다. 구할 인력도 마땅치가 않다"며 "서울 대형병원에 인턴으로 들어오는 인원만 1000명이 넘는다. 한 병원의 입원 전담의 같은 경우가 10명을 채 뽑기 힘들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쉬운 얘기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병원 측의 부담이 커질 경우 환자의 어려움을 알면서도 안고 가야 할 문제로 여기는 동향이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경우 정부와 병원 누구도 환자의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한 주체자의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한 시가 급해 발을 동동 대는 환자의 어려움은 환자가 알아서 처리해야 할 문제로 치부된다는 뜻이다.

B 대학병원 관계자는 “막상 닥치면 그때부터 대안을 찾겠지만, 당장 의료인력이 줄어들면 환자들의 불편은 당연히 생길 것이다. 그런데 병원으로서는 논의할 시간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부담, 인력 충원 어려움 등으로 빠른 해답을 찾기 힘들다"며 "막막하지만 당분간은 환자의 애로사항을 안고 인턴 없이 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