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건설 경험에 이상징후 한눈에 알아채…차량 통제 안간힘
사고 면한 운전자 "생명의 은인" 감사에 "당연히 해야 할 일"
붕괴 직전 필사의 손짓…참사 막은 의인 "잘한 것도 없는데"
"중장비를 오랫동안 몰다 보니까 교량을 눈여겨보는 편인데 교량이 배가 볼록해지듯이 틀어지길래 '저대로 두면 위험하다'는 직감이 들었죠."
제9호 태풍 '마이삭'이 강타한 지난 3일 강원 평창에서 다리가 무너지기 불과 30초 전 차량 통행을 제지해 인명피해를 막은 박광진(58)씨.
자칫하면 누군가 다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에서 용기를 낸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용감한 시민', '영웅', '의인' 등 수식어를 붙였지만, 박씨는 "뭐 잘한 것도 없는데…"라며 부담스러워했다.

널리 칭송되는 위인의 이야기만큼이나 뛰어난,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박씨는 이야기 내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주변의 뜨거운 칭찬에 손사래 쳤다.

박씨는 3일 오전 7시 25분께 진부면 하진부리 시가지와 송정리를 연결하는 송정교(길이 150m·폭 8m)의 균열을 가장 먼저 알아챘다.

다리가 무너지기 불과 3분 전이었다.

"거실에서 내려다보니까 가드레일이 약간 틀어지는 듯하더라고요.

다리가 일직선에 돼야 하는데 중간이 살짝 배가 불러서 나와 있었어요.

자세히 보니까 상판이 'V'자 형태로 가라앉지 뭐예요"

송정교 인근 주택 2층에 사는 박씨는 평소에도 거실에서 자주 다리를 내다봤기에 누구보다 빨리 붕괴 조짐을 알아챌 수 있었다.

오랫동안 굴착기 등 중장비를 몰며 교량 가설이나 터파기 등 공사 현장을 수없이 다닌 덕에 '눈썰미'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다리 붕괴를 직감한 박씨는 곧장 슬리퍼를 신고 우산을 챙겨 집에서 뛰쳐나갔다.

양방향 차량 통행을 통제하기에는 힘에 부친다고 판단한 그는 홍준균(48) 송정4리 이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박씨가 다리 앞에 도착한 3분 사이 다리는 이미 버틸 수 있는 한계치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 순간 다리 건너편에서 승용차가 진입했다.

박씨는 망설임 없이 다리에 바짝 다가가 손을 좌우로 크게 흔들고, 차량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뒤 물러나라고 손짓했다.

"다리 건너면 안 돼요.

오지 마세요.

피하세요!"라고 크게 외쳤지만, 거리도 멀고 빗소리 등에 묻힌 탓에 박씨는 더 크게 손짓했다.

박씨의 간절함이 승용차 운전자에게 닿았을까.

다리를 절반가량 지난 승용차 운전자는 박씨를 발견하고는 비상등을 켜고 급히 후진했다.

붕괴 직전 필사의 손짓…참사 막은 의인 "잘한 것도 없는데"
"너무 머니까 소리가 들리지 않잖아요.

그래서 막 크게 'X'자로 흔들고, 오지 말고 뒤로 가라고 손을 흔들어댄 거죠."
박씨는 승용차가 후진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물러나라고 손짓했고, 다리에 진입하려는 다른 차들에도 손을 가로저으며 진입을 극구 말렸다.

그리고 30초가 지난 7시 28분 55초께 다리 일부가 폭삭 주저앉았다.

이 같은 박씨의 선행은 주변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박씨는 다리 유실 후에도 면사무소 직원, 소방, 경찰 등과 함께 오전 9시까지 다리를 떠나지 않고 통제에 힘을 보탰다.

이튿날 박씨는 사고를 면한 승용차 운전자로부터 감사 전화를 받았다.

이 운전자는 박씨에게 '다리를 지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박씨를 발견했다며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두 사람은 평소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지만, 이 일을 계기로 '생명의 은인'이자 '잊지 못할 인연'이 됐다.

박씨는 "위급한 상황이니까 통제를 해줘야겠단 생각뿐이었어요.

CCTV에 찍혀서 알려지긴 했지만, 그냥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인데 큰 기삿거리가 될 줄 몰랐네요"며 겸손해했다.

붕괴 직전 필사의 손짓…참사 막은 의인 "잘한 것도 없는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