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기소하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 법무부가 진행 중인 9000억원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이 한국 정부에 불리하게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가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재판이 시작되면 우리 정부가 엘리엇에 삼성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을 명분이 사라지는 데다 검찰이 주장하는 ‘삼성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 논리가 엘리엇의 주장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최소 7억7000만달러(약 9108억원)의 피해를 봤다”고 주장해왔다.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을 앞세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과정에 개입했고, 이 때문에 엘리엇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삼성물산 측에 불리한 합병 비율이 도출됐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 측이 로비를 통해 국민연금을 움직였고, 삼성물산과 그 주주들에게 불리한 합병을 했다는 검찰의 시각과 비슷하다. 엘리엇은 2018년 7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했다.

엘리엇은 지난 6월 중재 판정부를 통해 한국 법무부에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서 등 이 부회장과 관련된 수사 기록을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법무부의 반대로 기각됐다. 수사 자료 제출은 피의사실공표에 해당할 수 있다는 법무부 측 논리를 ISD 판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국내 한 투자중재 전문가는 “앞으로 수년에 걸친 재판을 통해 엘리엇이 삼성 관련 자료를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재판 과정에서 검찰 논리를 활용할 수 있다”며 “이에 다시 정부(법무부)가 방어에 나서면서 ISD 소송도 힘겨운 소모전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