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파업 참여 전공의, 응급실 등서 자발적 진료"

취약지 의사들 "의대증원 만으로 무너진 공공의료 못 살려"
"취약지 환자 위해 필요한 것은 진료 환경과 수가 개선"
한 전공의가 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반대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사진=뉴스1

한 전공의가 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반대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일부에서는 전공의들이 파업하고 집에서 놀면서 환자들을 내팽개쳤다고 욕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병원은 전공의들이 조를 짜서 중환자실, 응급실, 입원환자 병동 등에서 환자를 보고 있습니다. 일부는 자발적으로 지역사회 보건소 등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진단도 돕고 있죠."

한 서울대병원 교수의 말이다. 그는 "전공의, 전임의 파업으로 노안이 와 눈도 제대로 안 보이는 50대 교수들이 피를 뽑으려니 여간 힘든게 아니다"고 토로하면서도 "전공의들이 환자를 내팽개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젊은 의사들이 정부에 대한 항의의 뜻을 내비치면서도 꼭 필요한 곳에서는 환자를 돌보고 있다는 취지다.

실제 중앙대병원 신경외과 4년차 레지던트는 파업 중이던 25일 새벽 4시30분까지 담당 교수의 요청으로 뇌출혈(지주막하출혈) 환자 응급수술에 참여했다. 한림대성심병원 전공의도 응급실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는 이들을 경찰에 고발했다가 이런 상황을 뒤늦게 파악하고 고발을 취하했다. 해당 교수는 "애타는 환자들에겐 죄송한 마음이지만 전공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교수들도 며칠째 집에 못가고 있다"며 "사람들이 젊은 의사들의 마음을 좀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사들이 한 목소리로 얘기하는 '신뢰'
파업에 참여한 전공의, 전임의, 대학병원 교수들이 한 목소리로 얘기하는 것은 '신뢰'다. 이들은 "정부와 의사들 사이에 신뢰가 깨졌다"고 했다. 파업을 이끌고 있는 젊은 의사들은 정부에 '정책 철회 명문화'를 요구했다. 이를 통해 그나마 깨진 신뢰를 보장받겠다는 것이다.

젊은 의사들은 정부와 정치권의 행동이 불신을 자초했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가 '공공의대 시도지사 추천제'를 해명하면서 '시민단체 추천'이라고 했다가 이를 다시 번복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젊은 의사들은 한정애 국회 보건복지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전공의들과 만나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다음날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되면서 복지위원장 사임 의사를 밝힌 것도 신뢰를 무너뜨린 행동으로 보고 있다.

이들의 선배 의사들이 정부와 정치권에 갖고 있는 불신의 깊이는 좀더 깊다. 2000년 의약분업 파업 때 정부와 했던 약속이 줄줄이 번복된 것을 보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의사들 사이의 믿음은 깨졌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돈은 갚겠다면서 차용증은 써주지 못한다고 하니 당연히 믿을 수 없는 것"이라며 "정부에서 자신있게 취소하겠다라는 말이 나온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했다. 그는 "이미 의사들은 한 번 정부에 속은 기억이 있다"며 "또 다시 종이 한 장 써주지 못한다는 데 어떻게 믿겠는가"라고 했다.
○정부 반대하는 의사도 '증원 필요' 언급도
사태의 시작은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2022학년도부터 10년 간 4000명의 의대 정원을 한시적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의사들은 정부가 대한의사협회 등을 '패싱'하면서 논란을 키웠다고 했다. 이른바 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의정 갈등 사태에서 정부 잘못을 지적하는 의사들 중 상당수는 "의대 증원은 필요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의사를 늘려도 지금 정부가 발표한 방안으로는 절대 취약지역 의료 환경을 개선할 수 없다"고도 했다. 사회적 논의를 거쳐 좀더 찬찬히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면 지금처럼 사태가 악화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의사들과의 소통 없이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은 젊은 의사들에게서도 나왔다.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1일 기자간담회에서 "공공의대 법안을 발의 중이라고 했지만 이미 남원에 부지가 확보됐고 담당 공무원이 정해지는 등 사전 준비가 됐다는 의심이 든다"며 "전공의협의회와 의대생협회가 5월부터 각종 공공의대 토론회 패널로 참석시켜달라고 요청했지만 많은 의원실이 거부했고 공개적으로 보도자료 나오는 것을 저지했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이 이렇게 추진하는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도가 무너진 공공의료를 살리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의료계에서는 '적절한 해답은 아니다'고 했다.

공공병원에 근무한 적이 있다는 한 의사는 "국내 공공의료의 문제는 공공병원이 의사들이 가고 싶은 병원이 아니라는 데 있다"며 "진료 업무보다 서류 업무가 많고 정권이 바뀌면 수시로 낙하산 원장이 내려오는 공공병원은 양질의 의사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이런 공공병원을 민간병원과 같은 경쟁에 내몰아 적자 늪에 허우적 거리게 만드는 것이 지금의 의료 시스템"이라며 "공공의전원을 세우고 지역의사를 육성하는 것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한 차례 실패한 의학전문대학원을 활용해 공공의대를 만드는 것은 한계가 클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다른 지역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한 의사는 "10년 간 지역의사 의무복무와 비슷한 대표적인 의무복무 제도가 군의관과 공보의인데 이 두 집단은 사실 가장 효율성이 떨어지는 의료집단"이라고 했다.

그는 "군인이 크게 다치거나 수술 받아야 하면 군병원이 아닌 민간병원에 가서 수술 받는다"며 "공공의대가 만들어지고 이곳을 졸업해 의무 복무하는 의사가 나오면 부담스런 환자는 굳이 책임지지 않고 민간병원으로 보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지역의 의료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편향된 진료비 배경엔 의료계 내부 잘못도
'공공의료와 기피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젊은 의사들의 목소리만 놓고 보면 정부 잘못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배 의사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의료기관에서 받는 진료비는 매년 의료단체장과 건강보험공단이 계약하는 수가(환산지수)와 상대가치점수를 곱한 값이다. 대개 이를 편하게 수가라고 부른다.

상대가치점수는 진료 난이도 등에 따라 매긴다. 이 점수를 결정할 때는 의료계 내부 각 학회 등이 참여하는데 점수에 따라 과별 수익이 달라지다보니 의료계 내부서도 힘 쎄고 목소리 큰 분야 점수가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의사들이 기피과를 살려야 한다는 취지로 수가 인상을 요구해왔지만 실제 의료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서울 등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상황에서 지역 의료기관들에 수가 조정은 더욱 절실하다. 전남지역 의료기관에 근무하고 있는 의사는 "서울 대형병원은 대동맥박리 수술을 한달에 20~30회씩 하지만 지역 병원은 1년에 20회 하기도 힘들다"며 "하지만 병원은 한 건의 수술을 위해 의사, 간호사 등의 인력을 모두 가동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지역 의료기관들이 이런 수술을 포기하게 되면서 지역 의료서비스 질은 떨어지고 서울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간이식은 수술 수가가 1억 원 가까이 되기 때문에 역량이 되는 병원은 지역 병원이더라도 웬만하면 간 이식 의사를 채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수가를 통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남지역에서 환자들을 책임지고 있는 이 의사는 "해답은 우리가 이미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이렇게 말했다.

"취약지역에서 치료 못받고 돌아가실 것 같은 환자를 서울로 보낼때마다 죄송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더 마음 아픈 건 환자 보호자들의 태도예요. '저희 병원서 치료 못해 죄송하다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말씀드리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세요. 차라리 화라도 내시면 덜 미안할텐데... 지역은 이런 구조가 이미 굳어졌습니다. 공공의대 세우는데 수천억원, 운영예산도 수천억원 단위라던데 이 돈을 좀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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