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어둠 속 장갑차 못 봤을 가능성"…부검·블랙박스로 원인 규명
호위차량 없이 장갑차만 2대 운행…미군 안전규정 준수 여부도 확인
직선 도로서 '쾅'…SUV-미군 장갑차 추돌 원인 다각도 조사
지난 30일 밤 경기 포천에서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가 미군 장갑차를 추돌해 SUV 탑승자 4명 전원이 숨진 사고의 원인을 두고 경찰이 다각도로 조사 중이다.

경찰은 일단 빠른 속도로 달리던 SUV가 미처 장갑차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뒤에서 들이받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거의 일직선인 도로에서 SUV 차량이 대부분 파손되고 미군 장갑차의 무한궤도 일부가 부서질 정도로 강한 충돌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SUV 차량의 운전 부주의뿐 아니라 미군의 안전규정 미준수 등 여러 가능성을 염두하고 수사 중이다.

31일 경찰 등에 따르면 사고가 난 지점은 포천시 관인면 중리 영로대교 위 왕복 2차로다.

이 도로는 일대를 잘 아는 주민과 인근 미8군 로드리게스 사격장(영평사격장)에서 훈련하는 군용 차량들이 주로 이용해 평소 통행량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야간에는 군 차량 이외 통행량이 거의 없고 직선 도로여서 차들이 빠르게 달리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가 난 장갑차는 작전 수행을 위해 차체 색이 어둡고 후면에 있는 등도 승용차만큼 크고 밝지 않아, 비록 가로등이 켜져 있었지만 야간에 운전자가 빨리 발견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있다.

승용차보다 훨씬 낮은 속도로 주행하는 장갑차는 당시 SUV 차량에 정지된 장애물이나 마찬가지였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사고 당시 군용 차량 이동 시 동행하며 불빛 등으로 이동 사실을 표시하는 '콘보이'(호위) 차량도 동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한 포천 시민은 "(사고가 난 도로는) 평소에도 야간에 군용차들이 지나가는데 어두우면 잘 보이지 않아 다닐 때마다 겁이 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직선 도로서 '쾅'…SUV-미군 장갑차 추돌 원인 다각도 조사
하지만, 단순 전방주시 소홀로만 단정 짓기에는 몇 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인근 지역 주민인 사고 SUV 운전자와 탑승자들은 해당 도로에서 군용 차량이 자주 지난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사고가 난 도로는 거의 직선이라 일반적으로 굽은 시골길에 비해 전방주시가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SUV 블랙박스 분석 결과, 사고 직전 운전자가 바뀐 것으로 파악돼 이 부분에 대해서도 경찰이 조사 중이다.

경찰이 확보한 블랙박스에는 다리 진입 전 상황까지는 녹화가 돼 있지만, 진입 후부터 충돌까지 상황은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러한 의문점을 해소하고 사고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기 위해 운전자 A씨에 대한 부검을 의뢰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SUV 탑승자 전원이 안타깝게 사망한 상태라 현재로서는 사고 원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성급하다"며 "미군 측에서도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마무리되면 결과를 한국 경찰이 받아 사건 원인을 규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30일 오후 9시 30분께 포천 영로대교에서 SUV가 미군 장갑차를 추돌했다.

이 사고로 SUV에 타고 있던 50대 4명(여성 2명, 남성 2명)이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끝내 숨졌다.

또 장갑차에 타고 있던 미군 1명이 가벼운 상처를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숨진 이들은 2쌍 부부로 이날 모임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참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가 난 군 차량은 미군 210포병여단 소속 인원 수송용 장갑차로, 당시 로드리게스 사격장에서 철원에 있는 실사격 훈련장으로 이동 중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와 관련해 주한미군 사령부는 이날 사고에 대해 "비극적 사고로 사망한 민간인 가족에게 조의를 표한다"며 "미군은 한국 정부의 조사에 협조하고, 희생자를 애도하면서 일시적으로 해당 지역의 훈련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