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뒤 폭염에 병충해 피해 급증…복숭아는 단맛 사라져
수확량 절반 이하 곤두박질…소매가 올라도 농가 소득 제자리
[르포] "값이 오르면 뭐해" 병충해로 썩고 무른 애호박·복숭아
"저기 잎이 다 죽은 것 보이시죠? 곰팡이도 번지고…날이 더워지면서 병도 더 심하게 번질 것 같은데 농사지을 맛이 안 나네요.

"
18일 오전 강원 화천군 화천읍 풍산리에서 만난 농민 한모(46)씨는 비 피해와 병충해로 엉망이 된 애호박 농장을 바라보며 탄식을 했다.

비닐하우스를 따라 넝쿨이 뻗은 애호박 줄기는 벌써 가을이 지난 듯 힘이 없었고, 잎도 갈색으로 변해 말라붙었다.

바닥을 살펴보니 곳곳에 애호박이 떨어져 썩어들어갔고 줄기에 달린 열매 일부에는 곰팡이가 잔뜩 번졌다.

한씨는 이것이 긴 장마가 불러온 피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애호박 주산지인 이곳에 6년 전부터 6천600여㎡(2천여평) 규모의 농장을 지었다.

[르포] "값이 오르면 뭐해" 병충해로 썩고 무른 애호박·복숭아
수확이 한창인 이맘때면 매년 밭에서 8㎏들이 상자로 하루 30상자씩 애호박을 땄다.

하지만 장마가 그친 이달 중순부터는 10상자도 채 거두기 힘들다.

게다가 6만원 선으로 형성된 도매가격도 최근 크게 떨어져 3만원 선까지 주저앉았다고 말했다.

애호박 한 상자에 20개가 들었으니 1개당 채 2천원도 받지 못하는 꼴이다.

이날 각 대형마트 홈페이지에는 애호박이 1개당 3천950원∼4천980원에 판매되고 있다.

소매가 하락세와 비교해 도매가가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이다.

과수 농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날 춘천 유명 과수 재배단지인 신북읍 유포리의 한 복숭아 농가를 찾아갔을 때 농장 주변에서는 시큼한 악취가 가득 풍겼다.

농장 구석구석 살펴보니 장마에 떨어진 복숭아들이 썩어가며 내뿜는 악취였다.

[르포] "값이 오르면 뭐해" 병충해로 썩고 무른 애호박·복숭아
농민 김부영(72)씨는 "50년 동안 여기서 농사를 지으면서 이런 비 피해는 처음"이라며 "잠깐 지나가는 태풍보다 긴 장마가 더 무섭다"고 말했다.

이 농장도 예년 같으면 4㎏들이 상자로 하루에 200상자씩 복숭아를 거뒀을 테지만, 지금은 100상자도 채우기 어렵다.

게다가 수확한 복숭아 대다수가 상처가 나거나 부분적으로 물러 상품성을 잃었다.

한창 뙤약볕 아래서 단맛을 더해야 할 복숭아는 역대 최장기록을 세운 장마에 맛을 잃었다.

김씨는 "조금 상처가 난 복숭아라도 맛이 좋아서 평소에는 아는 사람들이 사 갔는데 올해는 맛이 맹탕이라서 처치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어 "습한 날씨에 더위까지 찾아오니 잿빛곰팡이병, 탄저병, 심식충 등 병충해가 슬슬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농민 피해를 헤아린다면 정부나 춘천시가 농약이라도 지원해줘야 한다"고 토로했다.

[르포] "값이 오르면 뭐해" 병충해로 썩고 무른 애호박·복숭아
고랭지 배추밭도 장마 뒤 피해가 우려된다.

여름 배추 주산지인 태백시 매봉산 고랭지 배추밭에는 이날 14개 수확팀이 달라붙어 배추 40t가량을 출하하고 있다.

태백농협에 따르면 이는 평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일부 배추에서 무름병이 나고, 긴 비에 뿌리가 약해져 쓰러지는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일부 지역에서는 배추 반쪽시듦병이 번지고 있다.

이 병은 아직 마땅한 적용 약재가 없어 빠른 방제 작업이 최우선이다.

이에 농민들은 배추에 병이 번지기 전으로 출하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

[르포] "값이 오르면 뭐해" 병충해로 썩고 무른 애호박·복숭아
원래 매봉산 배추는 8월 하순부터 본격적으로 출하하지만, 올해는 12일로 앞당겨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정만 매봉산 영농회장은 "배추 농사에 물은 필수조건이지만, 올해 여름은 비가와도 너무 많이 왔다"며 "물기를 가득 머금은 배추밭 땅속에는 병충해 원인인 바이러스와 세균이 가득한데 온도가 올라가면 병이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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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