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 前 회장
양호 前 회장
5000억원대 펀드 사기를 벌인 옵티머스자산운용 경영진이 ‘모피아’(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를 들먹이며 금융감독원의 비호를 받은 정황이 담긴 녹취 파일이 공개됐다. 금감원은 옵티머스의 신규 경영진을 비호하면서 이들에 대한 사기 제보는 덮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본지 8월 13일자 A1면 참조

한국경제신문이 18일 입수한 400여 개 옵티머스 사내전화 녹취 파일에는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 초까지 김재현 옵티머스운용 대표(구속 기소)가 경영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금감원의 대주주 승인 및 현장검사에 대응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옵티머스운용 회장을 맡았던 양호 전 나라은행장이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최흥식 당시 금감원장을 만나 모종의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정황이 드러났다.

김 대표는 옵티머스운용 주주에게 전화를 걸어 “양 회장이 이 전 부총리의 친구이자 현 금감원장의 고등학교 선배”라며 “그분 힘으로 (운용사) 라이선스가 유지되고 있다. 금감원 도움을 받아서 굉장히 우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양 전 회장은 뉴욕은행 한국지사장, 미국 한인은행인 나라은행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이 전 부총리와는 경기고 동기로 알려져 있다. 당시 그가 ‘이헌재 사단’을 만나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그해 10월 말께 당시 최 금감원장과 만난 것으로 보인다. 최 전 원장은 이헌재 사단 인물로 양 전 회장의 경기고 후배다. 양 전 회장은 비서에게 “다음주 금감원에 가는데 VIP 대접을 해준다고 차번호를 미리 알려달라고 한다”며 “김 대표 차량번호를 문자로 전송해달라”고 말했다.

또 금감원 부원장을 지낸 전홍렬 김앤장 고문을 만나 부탁한 정황도 나왔다. 김앤장의 한 변호사는 김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전 고문을 통해 사건 내용을 들었다.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양 전 회장에게 금감원이 우호적으로 일을 잘 처리해주고 있다고 수차례 보고했다. 그해 11월 초 김 대표가 “금감원에서 사후 조치방안을 협의하고 왔는데 그쪽 이슈는 잘 해결되고 있다”고 말하자, 양 전 회장은 “월요일 4시에 이 부총리를 만나러 가는데 가서 부탁할 필요 없겠네. 사정 봐가면서 해야겠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금감원이 옵티머스 경영진 편에 섰다고 추정할 만한 통화 내용도 있다. 양 전 회장은 법률대리를 맡았던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이규철 변호사(전 최순실 특검보)에게 전화를 걸어 “이혁진(전 옵티머스운용 대표)이 금감원을 세 번이나 찾아갔다고 한다. 빨리 고발해서 정리해달라고 한다. 금감원 직원도 난처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양 전 회장에게 “변호사가 금감원 건 많이 하는데, 감독원과 통화해보더니 이 정도로 우호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처음 봤다고 한다”고 전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옵티머스 사내전화 녹취록에서 나온 양 전 회장 및 김 대표의 통화 내용은 경영권 분쟁 과정에 있던 당사자 일방이 진술한,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라고 밝혔다. 또 녹취록에 양 전 회장 등이 금감원 담당자에게 부탁하는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김 대표의 말은 과시용이었을 확률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범죄행위를 저질러 구속돼 있는 사람이 오래전 통화한 내용이라 신빙성은 더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