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회군' 시위로 옥살이한 대학생들, 40년 만에 재심 무죄
'서울역 회군'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1980년 5월의 민주화 시위에 참가한 혐의로 대학생 시절 징역형을 받았던 60대 남성들이 40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4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이정민 부장판사)는 앞서 포고령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던 조영식(60)씨와 이대수(65)씨에 대해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씨가 1980년 시위 과정에서 수배되자 타인의 운전면허증에 자신의 사진을 붙여 사용한 공문서위조 혐의에 대해선 징역 4개월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 종교부장이었던 조씨와 연세대 소속 복학생 모임인 56인회 총무였던 이씨는 1980년 5월 15일 연세대생 1천500여명을 이끌고 계엄해제, 유신잔당 퇴진 등을 요구하는 유인물을 살포하며 시위를 벌인 혐의로 체포됐다.

'서울역 회군' 시위는 대학생과 시민 10만여명이 서울역 지상 광장 앞에 모여 계엄 해제와 민주화 추진을 주장하며 일어났다.

철야 농성 주장과 쿠데타 빌미를 줄 수 있으므로 퇴각하자는 주장이 엇갈렸고, 시위를 지속하면 군 개입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에 서울역 앞까지 갔던 시위대가 자진 해산했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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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되고 하루 뒤 '일체의 시위 등 단체활동을 금한다'는 내용의 계엄 포고 제1호가 발령돼 있었다.

1980년 9월 계엄보통군법회의는 조씨와 이씨에 대해 각각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이씨는 항소하지 않았고 조씨는 육군고등군법회의와 대법원에서 항소와 상고가 모두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됐다.

이들은 지난 3월 재심청구를 했고 이어 5월 법원은 재심 개시 결정을 확정했다.

재심 재판부는 40년 전 당시 정치 및 사회 상황이 군병력을 동원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계엄 포고가 구 계엄법과 헌법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또 재판부는 "이 사건 계엄 포고의 내용이 영장주의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도 위배되고 표현의 자유 등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구 헌법과 현행 헌법, 구 계엄법에 위배되어 위헌이고 위법하여 무효"라며 이들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