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훈 조각가, 불꽃 같은 삶 살다간 10명의 모습 흉상으로 재연
"중국 등 누비며 자료 수집" 충북 여성 독립운동가 전시관에 전시

"나라 위해 헌신한 그들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조각으로 되살린 여성 독립운동가의 민족혼
충북 진천 출신의 정창훈(65) 조각가의 지난 1년은 고뇌와 열정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그는 충북도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조성하는 '충북 여성 독립운동가 전시관'에 들어갈 독립운동가 10명의 흉상 제작을 맡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되살리는 작업은 순탄치 않았다.

짐작은 했지만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다.

정 작가는 "일제강점기 신문에 난 사진이 고작이거나 그것조차 없는 분이 많았다.

제일 좋은 사진이 감옥 끌려갈 때 사진이니 어땠겠냐"고 당시를 떠올렸다.

독립운동가의 옛 모습을 그대로 재연하기록 마음 먹은 그는 일일이 후손들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았다.

중국 북경까지 찾아간 적도 있다.

공개되지 않은 사진과 자료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그마저 없으면 후손 중 가장 닮은 사람을 모델로 삼았다.

이렇게 제작한 기본 틀은 후손과 관계자 등에게 보여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정 작가는 독립운동가 한 명 한 명을 표현할 때마다 그 사람의 삶에 집중했고, 활동 당시 시대적 배경과 사연 등을 파고 들면서 그들의 삶에 '빙의'하는 스스로를 느꼈다고 회고했다.

"기억하겠습니다"…조각으로 되살린 여성 독립운동가의 민족혼
그는 "윤봉길 의사에게 도시락 폭탄을 건넨 연미당 선생이 거사 후 일본군의 눈을 피하려고 머리를 짧게 깎아 중국 소녀처럼 변장한 모습이나 여성 광복군 1호인 신정숙 선생이 100일 된 자녀를 등에 업고 일본군과 총격전을 벌였다는 얘기를 듣고 작업하는 내내 가슴이 저려와 숨이 멎는 듯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오로지 독립을 위해 모든 걸 내던진 그들에게 자신의 삶이 있었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요즘 우리는 작은 것에도 편협하게 싸우고들 하는데, 어떻게 해서 이 나라가 존재하는지를 반드시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작가가 천신만고 끝에 완성한 여성 독립운동가 10명의 흉상은 청주시 상당구 목련로 27(방서동 649-1)에 위치한 충북미래여성플라자 A동 1층 전시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지난 3일 문을 연 이 전시관은 남성 중심의 독립운동사에 가려져 있던 여성 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국내 유일의 공간이다.

104㎡의 전시관에는 박재복(1918∼1998년)·신순호(1922∼2009년)·어윤희(1880∼1961년)·오건해(1894∼1963년)·윤희순(1860∼1935년)·임수명(1894∼1924년)·연미당(1908∼1981년)·박자혜(1895∼1943)·신정숙(1910∼1997)·이화숙(1893∼1978) 지사 10명의 흉상이 전시돼 있다.

이들은 충북에 본적을 뒀거나 연고(본인·부모·남편 출생지, 남편 본적)가 있는 2018년까지의 서훈 대상자다.

"기억하겠습니다"…조각으로 되살린 여성 독립운동가의 민족혼
본적이 중원군(현 충주) 엄정면인 윤희순 지사는 구한말 최초의 여성 의병장이고, 박자혜 지사는 청주에 사당과 묘소가 있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아내다.

모녀지간인 오건해 지사와 신순호 지사는 독립에 대한 열망 하나로 대를 이어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영동의 빈농에서 태어난 박재복 지사는 조선 노동자의 항일의식을 일깨운 선각자로 통한다.

이들 외에도 흉상은 없지만 이국영(1921∼1956년) 지사 등 6명의 영상 기록도 볼 수 있다.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재조명에 후손들도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5일 후손 초청 행사에 참석한 박천민(오건해 지사의 외손녀이자 신순호 지사의 딸)씨는 "할머니는 유관순 열사와 3·1운동 1주년 투쟁을 했고, 어머니는 임시정부를 위해 일하셨다"며 "두 분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많은 이들이 잊지 않고 전시관을 찾아주는 것을 기뻐하실 것 같다"고 전했다.

전시 관람은 휴관일인 월요일과 설날·추석을 제외한 모든 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가능하다.

전시관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온라인 전시실(http://cbk.bizvion.kr)도 운영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