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해에 수해까지 '이중고'…"뿌리 약해져 내년 농사도 걱정"
수확 앞둔 배 과수원은 '펄밭'으로…"한 개도 못 건져"

"냉해에 수해까지, 다압면이라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
12일 오전 전남 광양시 다압면에서 만난 임옥자(82) 씨는 물이 빠진 매실 과수원에서 잎이 떨어진 매실나무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매실 주산지 광양 다압면도 '쑥대밭'…"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임씨는 18년째 이곳에서 8천900㎡에 매실 농사를 짓고 있는데 이번 폭우로 불어난 섬진강 물에 모두 비에 잠겼다.

물은 빠졌지만, 오랜 시간 침수된 나무는 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바닥에는 섬진강에서 유입된 펄로 뒤덮여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임씨는 "보통 나무 한 그루에 매실 20kg 정도를 수확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냉해로 1kg이 채 되지 않았다"며 "물에 잠겨 뿌리가 약해진 데다 잎이 다 떨어져 내년에 열매가 맺힐 수 있을지 걱정이다"고 토로했다.

매실의 주산지인 광양 다압면에서는 이번 폭우로 매실 25ha가 침수 피해를 봤다.

6월에 수확이 모두 끝났지만, 올해는 냉해까지 겹쳐 농민들의 시름이 깊다.

매실 주산지 광양 다압면도 '쑥대밭'…"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여느 때 같으면 수확 준비로 바쁠 배 농가는 상상을 초월한 피해 앞에 아예 일손을 놓았다.

가업을 이어 60년째 배 농사를 지어온 서현득(71) 씨의 배 과수원은 시뻘건 진흙으로 뒤덮였다.

정성스레 싸놓은 종이봉투를 열자 물에 짓물러진 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닥은 섬진강에서 밀려온 진흙이 펄을 이뤘다.

시간이 갈수록 물은 빠지고 있지만, 흙탕물 속에 방치됐던 배는 썩어가고 있다.

밤새 무섭게 내린 비에 뜬눈으로 지새운 서씨는 물에 잠긴 과수원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서씨는 "배 농사로 생계를 꾸려 가는데 올해는 한 개도 건질 수 없어 살길이 막막하다"며 "올해는 비교적 작황이 좋아 풍년을 기대했는데 모든 게 허사가 됐다"고 호소했다.

매실 주산지 광양 다압면도 '쑥대밭'…"특별재난지역 선포를"
매실과 밤을 가공해 수출하는 한 업체는 건조기와 선별기 등 기계가 모두 잠기는 피해를 봤다.

어른 키만큼 펄이 들어찬 공장 내부를 군부대와 자원봉사자, 공무원 등이 합심해 3일간 치워냈지만, 곳곳에는 침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매실장아찌와 진액을 만들기 위해 저온 창고에 보관 중이던 매실 10t 가운데 8t가량이 폭우에 휩쓸려 사라졌다.

1kg에 2만원씩 하는 비싼 밤도 2t이 모두 없어졌다.

업체 직원들은 물에 쓸려가지 않고 남은 매실을 모았지만, 이미 상품성을 잃어 팔수 없게 됐다.

6천만원 상당의 계량기와 7천만원 상당의 매실 선별기도 모두 물에 잠겼다.

물로 씻고 말려도 봤지만, 센서나 전기 장치가 모두 물에 닿아 다시 쓸 수 없게 됐다.

피해 농민들은 한결같이 침수 피해가 큰 다압면이라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전남도도 피해 규모가 커짐에 따라 특별재난지역 선포 신청지를 확대했다.

애초 6개 시군에서 8개 시군(나주·영광·담양·곡성·구례·화순·함평·장성)과 2개 면(광양시 다압면·순천시 황전면)을 정부에 건의했다.

매실 주산지 광양 다압면도 '쑥대밭'…"특별재난지역 선포를"
다압면에서는 매화축제로 유명한 매화마을과 항동, 원기, 신기, 평촌, 소학정, 염창, 항동 마을에서는 18가구가 침수돼 32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농작물 피해도 잇따라 논 4ha가 물에 잠겼고, 배는 10ha, 매실은 25ha가 침수됐다.

섬진마을에서는 제방 120m가 붕괴했고, 섬진강 하류 지역인 배알도 수변공원에서도 제방 50m가 무너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