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사건 관련 증언 "판결엔 영향 전혀 없었다…문건 읽어서 면목 없어"
사법농단 재판서 현직 대법관 첫 증언…이동원 "문건 받았다"(종합)
이동원(57·사법연수원 17기) 대법관이 현직 대법관으로는 처음으로 '사법농단 의혹'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했다.

이 대법관은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나왔다.

이 대법관은 서울고법 부장판사이던 2016년 옛 통진당 의원들이 낸 국회의원 지위확인 소송의 항소심을 맡았다.

이 사건의 1심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다시 심리·판단할 수 없다"며 소송을 각하했지만, 항소심은 이와 달리 소송 자체는 성립할 수 있다고 보되 의원들의 청구는 기각했다.

이는 "의원직 상실 결정 권한이 법원에 있다"는 대법원 수뇌부의 입장과 일치한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이민걸 당시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을 이 대법관과 만나도록 해 이런 입장이 담긴 법원행정처 문건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 대법관은 2016년 3월 이 전 기조실장과 만나 문건을 전달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그는 "이민걸과는 연수원 때부터 친한 사이로, (2016년) 2월 (내가) 서울고법으로 발령받자 식사를 같이 하자고 연락을 받았다"며 "식사가 끝나고 나서 읽어보라며 (이민걸 당시 기조실장이) 문건을 줬다"고 진술했다.

해당 문건에 대해서는 "10페이지 내외의 짧은 보고서 형태 문건으로, 국회의원 지위에 대한 확인이 사법판단의 대상인지 여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면 국회의원의 지위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 (각 경우의) 장단점 등 내용이 담겼다"며 "1심 판결에 대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술회했다.

이 대법관은 당시 식사하는 중에도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이 사건으로 화제가 옮겨졌으며, 그 때 만남의 목적을 짐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며 "판사는 일단 다른 사람이 사건에 대해 접근해오면 긴장하고 침묵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민걸 전 기조실장의 말에 특별한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는 취지다.

다만 이 대법관은 이 전 기조실장으로부터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의 말은 듣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 대법관은 "이민걸은 제가 형이라고 부르는 친구 같은 사이인데, 그렇게 이야기했으면 제가 화를 냈을 것"이라며 "지금도 악의 없이 선의로 (문건을)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전 기조실장이 법원 살림을 주도하는 만큼 재판권을 사이에 둔 헌법재판소와의 미묘한 관계 등에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고, 이 사건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법원 자체 조사가 시작된 뒤에야 알았다고 이 대법관은 진술했다.

실제로 이 대법관은 자신의 판결이 이 전 기조실장이 준 문건 등으로부터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도 증언했다.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이 "재판거래가 아니라는 소신이 지금도 동일하냐"고 묻자 이 대법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다만 자신이 문건을 읽었다는 점에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이 대법관은 "안 읽어도 되는데, 선례가 없는 법률적 문제에 봉착해 있다 보니 행정처에서 검토했으면 참고할 만한 게 있을까 해서 보긴 했다"며 "안 읽었으면 더 떳떳할텐데, 그걸 읽어서 면목 없게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대법관은 행정처가 재판부에 문건을 전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재판부가 행정처에 '검토한 자료가 있느냐'고 물을 수는 있지만, 행정처에서 거꾸로 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다"라며 "모든 것은 재판부 의도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 것이지, 외부에서 재판부에 접근하는 것은 절대로 반대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가 소회를 묻자 이 대법관은 "대법관으로서 증인석에 앉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겠지만, 형사재판을 해본 사람 입장에서 누구든지 증거로 제출된 서면의 공방이 있으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고 말했다.

이어 "증인석에 서서 '이 사건의 무게 가운데에서 재판부가 많이 고생하시겠구나' 생각했다"며 "잘 마무리해서 좋은 재판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