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 남짓 쪽방에 비좁은 창문 하나…"찬물로 씻고 누워도 자다 깨다 반복"
"감염보다 더 걱정되는 건 당장 먹고사는 문제"
[코로나19 여름] ① 선풍기 한 대 없는 쪽방에 닥친 무더위

[※ 편집자 주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 여름이라는 계절적 상황까지 겹치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장마가 평년보다 길어지면서 더위는 덜하지만 사회적 약자나 노인들의 여름나기는 힘들기만 합니다.

쪽방촌 사람들, 답답한 일상을 보내는 어르신들 이야기 등을 현장 취재로 소개합니다.

해외여행이 어려워지면서 비록 돈을 좀 쓰더라도 그럴듯한 국내 휴가지를 찾는 풍속도 등도 함께 짚어봅니다.

]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사업에 실패하고 가족과 헤어져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왔다는 김모(63)씨. 대여섯 차례 이사도 다녔지만 쪽방촌에서 지낸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23일 찾아간 김씨의 쪽방에는 20여년에 걸친 쪽방촌 생활의 흔적을 보여주듯 옷가지와 이불, 냉장고, 전기밥솥 등 세간살이가 한평 남짓한 공간에 가득했다.

창문은 맞은편 건물에 가로막혀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불을 켜지 않으면 낮에도 어두웠다.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인 그는 매달 25만원씩 월세를 내며 이 방에 살고 있다.

올해 여름은 평소보다 덥고 폭염·열대야도 잦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비좁은 방에 위태롭게 놓여있는 선풍기 한 대가 폭염에 맞설 유일한 냉방기였다.

이날 마침 비가 내려 밖은 비교적 시원했지만, 비좁은 쪽방 안은 덥고 습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계속 땀이 났다.

방 한쪽에는 습한 날씨에 아직 다 마르지 않은 빨래들이 옷걸이에 걸려 빼곡하게 널려 있었다.

복도 맞은편에 있는 공용화장실 냄새가 방 안까지 들어와 코를 찔렀다.

김씨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에어컨은 꿈 같은 소리"라고 했다.

"더운 날에는 찬물을 끼얹고 선풍기 바람을 쐬며 가만히 눕는다.

유독 날씨가 더운 밤에는 자다 깨기를 반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김씨는 방 안에서 홀로 지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그는 "아프면 결국 돈 문제가 생기다 보니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꺼려진다"며 "원래 동네 공원에 술자리도 많았는데 전보다 조용해진 것 같다.

집 밖에서 볼 일을 마치면 집에 와서 계속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폭염이 걱정되지 않느냐는 물음엔 "매년 있는 일이고 다른 곳에 갈 처지도 안 된다.

더우면 더운 대로 형편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김씨의 방이 있는 낡은 건물에는 비좁은 복도를 따라 쪽방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코로나19 여름] ① 선풍기 한 대 없는 쪽방에 닥친 무더위

◇ "코로나19도 걱정이지만…당장 오늘내일 먹고사는 게 더 큰 문제"
5년 전 관악구 신림동에서 용산구 갈월동 쪽방촌으로 이사 온 A(80)씨의 쪽방에는 선풍기조차 없었다.

최근 서울시립 서울역쪽방상담소가 주민들에게 선풍기를 나눠준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기도 했지만 도착했을 땐 선풍기 300여대가 이미 동나 있었다고 한다.

선풍기가 있어야 할 그의 쪽방에는 지난 겨울에 쓰던 난방기가 놓여 있었다.

그는 "은행에 가서 에어컨 바람을 쐬면 좋다고 하지만 우리처럼 옷차림이 남루하면 경계의 눈초리가 심하다"며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서울역 로비나 동네 공원에서 쉬는 편"이라고 했다.

요새는 쪽방 천장에서 비가 새거나 시멘트 가루가 떨어지기도 한다.

이 쪽방이 있는 4층짜리 건물 안에 공용화장실은 단 하나뿐이다.

이 화장실을 수십명이 함께 쓰고 있다.

A씨는 사업실패 후 부인, 자녀들과 연락을 끊고 지낸 지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이혼 절차를 밟지 않아 서류상 가족관계가 남아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매달 나오는 기초연금 20여만원과 공원 관리를 업무로 하는 공공근로 소득 80여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올해 12월이면 공공근로 일자리도 끝나는데,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새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유행이 걱정되진 않냐고 묻자 "감염병은 여유가 있고 형편이 괜찮은 사람들이나 걱정하는 것 같다"며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

또 "여기 사는 사람들은 감염돼도 그냥 감기로 생각하고 넘길 것"이라며 "폭염이나 코로나 걱정보다 당장 오늘내일 먹고 사는 생존 문제가 우선"이라고 했다.

다음날 찾은 동자동 쪽방촌 인근 '새꿈 어린이공원'에서는 쪽방촌 주민들이 삼삼오오 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술을 마셨다.

마스크를 쓴 주민들도 일부 있었지만 답답한 듯 마스크를 벗은 주민들도 많았다.

[코로나19 여름] ① 선풍기 한 대 없는 쪽방에 닥친 무더위

◇ 전문가들 "혹서기는 주거 빈곤층에 위협…정부가 주거환경 개선해야"
'2019년 서울시 쪽방촌 거주민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시 내 쪽방밀집 5개 구역(돈의동·창신동·남대문·서울역·영등포)에 사는 쪽방촌 주민들은 총 3천317명으로 파악된다.

이 중 서울역 쪽방밀집지역(동자동·갈월동·후암동)은 주민 1천명이 거주해 규모가 가장 크다.

실태조사 결과 쪽방촌 주민들의 소득수준은 50만원 이상 100만원 미만이 75.2%로 가장 많았고, 쪽방의 평균 월세는 23만1천원 수준이었다.

쪽방촌 주민의 70.3%가 주요 소득원이 정부 보조금이라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와 함께 닥친 폭염은 취약계층인 쪽방촌 주민들의 생존권에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이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에너지 취약계층인 쪽방촌 주민이나 홈리스에게 혹서기 기간은 위협 그 자체"라며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무더위 쉼터 다수가 폐쇄된 현재 시점에선 관련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전국에 있는 실내 무더위 쉼터 5만104곳 중 3만3천157곳(66.2%)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운영을 중단했다.

서울역쪽방상담소는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방역 수칙을 지키도록 하면서 실내·야외 무더위 쉼터를 계속 운영하기로 했다.

하지만 열대야 대피소로 마련된 실내 쉼터에 남녀 수면 공간이 나뉘어 있지 않은 등 환경이 열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윤영 사무국장은 "무더위 쉼터 증설도 필요하지만, 주거 빈곤층을 위한 근본 해법이 될 순 없다"며 "장기적으로 빈곤층이 최소한의 주거환경에서 살 수 있게 하는 정부의 주거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자동 쪽방촌에서 주민자치 활동을 하는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다행히 동자동 쪽방촌 일대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진 않았다"며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일부 주민들은 코로나19 여파로 수입이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양동(서울 중구) 쪽방촌 주민들은 재개발이 예정되면서 최근 강제퇴거까지 당하고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영구임대주택을 조성해 쪽방촌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공공주도 순환형 개발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