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 플라스틱통으로 그냥 빗물 받아"…"취약층 주거복지 대책 필요"
천장서 비 줄줄·벽엔 곰팡이…장마가 버거운 '쪽방촌 여름나기'
"장마철엔 습기가 차니까 눅눅해지는 게 가장 힘들죠. 비도 새고. 여름엔 에어컨, 겨울엔 보일러 틀면 돈이 많이 나올까 봐 겁나고요.

사시사철 힘들어도 고칠 돈도, 방법도 없으니 그냥 사는 거죠 뭐"
최근 전주 지역에 약 165㎜의 장대비가 휘몰아친 뒤인 16일 오후. 전주시 완산구 중노송동 '기자촌'에 사는 A(75)씨의 집에 딸린 좁은 주방 한쪽에는 아직 치우지 않은 플라스틱 통이 놓여 있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통 안에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비가 바닥에 튀지 않도록 받쳐놓은 휴지로 가득했다.

A씨는 "30년 전부터 지붕에 비가 스며들어 비닐을 덮어 놓았는데도 집안 곳곳에 물이 샌다"고 하소연하며 플라스틱 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천장서 비 줄줄·벽엔 곰팡이…장마가 버거운 '쪽방촌 여름나기'
A씨가 사는 기자촌 일대는 2006년 예비정비구역에 선정됐지만 이후 14년간 시공사 선정 등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며 개발이 지연되고 있다.

그 사이 기자촌을 떠나거나 노후화된 집을 리모델링해 거주하는 주민들도 많지만, A씨는 30년 전 주택을 임차했을 때 그대로 그 곳에 살고 있다.

1인 가구에 지원되는 기초연금 30여만원과 자녀들이 조금씩 보내주는 용돈이 수입의 전부인 A씨에게 지붕 보수는 엄두조차 내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A씨의 방 안 곳곳에는 샛노랗게 얼룩진 빗자국이 가득하고 벽엔 온통 곰팡이 천지이다.

바닥에 깔린 이불은 물기를 머금어 축축했지만 그는 괜찮다고 했다.

A씨는 "30년 전 계약했던 집주인이 재개발 전까지 지내도 된다고 해서 살고 있다"며 "방은 비좁고 군데군데 균열이 가득하고 재개발 후에는 갈 곳이 막막해지겠지만, 당장은 몸을 누일 곳이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씨처럼 노후한 주택이나 쪽방·여인숙·고시원 등 비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힘겹게 장마철을 나고 있다.

덕진동에서 만난 B(80)씨는 "최근 방안이 답답해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비가 와서 하루종일 집에 있어야 했다"며 "좁고 낡은 공간에 있으면 비오는 날은 낭만적이지 않다"며 우울해했다.

천장서 비 줄줄·벽엔 곰팡이…장마가 버거운 '쪽방촌 여름나기'
봉사단체들은 이처럼 주거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맞춤 복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주연탄은행 관계자는 "여름철 무더위나 겨울철 추위 못지 않게 힘겹게 장마철을 나는 분들이 많다"며 "집안으로 스며드는 빗물이나 곰팡이 등 좋지 못한 거주 환경에서 사는 이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