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고·인화여고 등 동생이 설립한 선인학원 이사로 일해
선인학원 학교들 1994년 공립화
한국군 첫 4성 장군 백선엽…인천에서 교육 사업자로도 활동

지난 10일 향년 100세로 별세한 백선엽 장군은 한국군 첫 4성 장군으로 유명하지만, 인천에서는 교육 사업자로도 알려져 있다.

13일 인천시와 시교육청에 따르면 고인은 1965년 설립된 선인학원에서 이사로 활동하며 학교 운영과 교육 행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선인학원의 설립자는 고인의 동생인 백인엽 예비역 중장(2013년 별세)이다.

선인학원 운영은 주로 동생 인엽씨가 맡았기 때문에 고인이 전면에 나서는 일이 많진 않았지만, 그 역시 이사회 이사로서 선인학원의 영욕의 세월을 함께 했다.

선인학원이라는 이름은 선엽·인엽 형제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서 만들었다.

당시 인천시 남구 도화동에 자리 잡았던 선인학원은 1947년 개교한 성광중학교를 모태로 한다.

선인학원은 1958년 성광학원을 인수하고 1965년 정식 발족한 뒤 1970년대 들어 엄청난 규모의 사학 재단으로 성장했다.

선인학원은 인천대·인천전문대·선인고·인화여고·선화여자상업고·운봉공고·운산기계공고·선인중·선화여중·효열초·진흥유치원 등 15개 학교를 거느린 매머드급 사학 재단의 위용을 뽐냈다.

1980년 당시 선인학원 재적 학생은 3만명에 달했고, 중고생 재학생은 인천 전체 사학 중고생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다.

동양 최대 체육관으로 불리던 선인체육관도 선인학원 부지 안에 있다가 2013년 완공 40년 만에 해체됐다.

이런 성장 배경에는 박정희 정권의 비호 아래 교세를 확장하며, 각종 사학 비리로 부를 축적한 그늘진 이면도 있다.

동생 인엽씨는 학교 운영과 관련해 각종 전횡을 일삼다가 1981년 결국 업무상 횡령, 배임수재 등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당시 그가 3년간 부정 편입학시킨 학생 수가 9천9백명에 달하고 이들로부터 받은 찬조금만 6억원이라는 수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고인은 이 사건이 터지자 다른 이사들과 함께 이사직 사의를 표명했지만, 정부는 그를 중심으로 조속한 정상화를 이루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며 관선 이사를 파견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생 인엽씨가 석방 이후에도 선인학원 소속 학교 운영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탓에 논란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1990년대 '범 선인학원 정상화 추진회' 발족과 함께 선인학원 사태가 인천의 시민운동으로까지 확장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백 장군 일가는 1993년 선인학원의 공립화를 조건으로 설립자의 권한 일체를 인천시에 기증했다.

이후 1994년 선인학원의 학교들은 공립학교로 바뀌었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현재 이들 학교에서 백 장군 일가의 자취를 찾아보긴 어렵다.

백 장군의 별세 소식 이후에도 분향소 설치 또는 그를 추모하는 행사는 치러지지 않았다.

선인고 관계자는 "공립학교로 전환한 지 20년이 훨씬 넘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도 있어서 분향소 설치나 추모 행사를 따로 준비하지는 않았다"며 "옛 선인학원 소속 다른 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백 장군의 안장식은 오는 15일 오전 11시 30분 대전현충원에서 육군장으로 거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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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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