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선진 임업기술 이식한 한독사업 주역 김종관 박사, 1975년부터 10년간 헌신
국가와 산주가 수평적 관계에서 산림경영 기반 닦아…국내 임업 수준 끌어올려
'민둥산 울산이 울창해진 40년전 한독산림사업을 아시나요'


"울주군의 산림이 원래 이렇지 않았죠. 너무 황폐해서 오히려 민둥산에 가까웠죠."
울산 녹화(綠化)사업의 주역인 김종관(79) 농학박사가 들려준 이야기는 다소 놀라웠다.

'영남알프스'를 보유한 울주군은, 전국에서도 울창한 숲이 많기로 잘 알려진 지역이다.

태초부터 울창했을 것만 같은 울주군의 산림도, 1970년대 이후 많은 이들의 수고로움 덕에 풍성해진 것이라고 김 박사는 4일 강조했다.

"일제가 전쟁 물자로 나무를 베어간 것을 시작으로 6·25 전쟁, 난방·취사용 임산연료를 마구잡이로 채취하는 시절을 거치면서 황폐화가 심각했어요.

면적당 입목 규모를 나타내는 입목축적이 지금의 15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쳤어요.

"
우리 정부는 산림을 회복하고, 산림경영을 통한 경제적 이익을 꾀하고자 1970년대 '치산녹화사업'을 추진했다.

그 연장선에서 울산에서는 울주군 두서면과 상북면을 중심으로 '한독산림 협력사업(이하 한독사업)'이 진행됐고, 김 박사는 그 시작부터 종료까지 직접 사업에 참여하고 성과를 낸 주인공이다.

한독사업은 독일의 선진 임업기술을 지원받아 현대적인 산림경영 기반을 마련하려는 목적이었다.

울주·양산·밀양·청도·월성 등에서 임업경영 시범사업이 이뤄졌다.

1966년 체결된 한국과 독일 간 기술협력 기본 합의를 근거로 1974년 '한독산림경영사업기구(이하 한독기구)'가 출범했고, 1975년에는 본격적인 사업을 위한 양산사업소가 개설됐다.

울산사업은 1984년까지 10년간 진행됐다.

'민둥산 울산이 울창해진 40년전 한독산림사업을 아시나요'

1968년 고려대 임학과를 졸업한 뒤 유엔 한국산림조사기구에서 근무했던 김 박사는 1974년 유엔 사업 기간이 종료됨에 따라 농업진흥공사로 직장을 옮긴 터였다.

한독기구 출범 소식을 접한 그는 국제협력 사업에 참여하려는 생각에 즉시 지원서를 냈다.

한독사업은 독일인 전문가 2∼6명이 상주하며 산림경영 기법을 전수하는 방식이었지만, 당장 울산에서는 산림경영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경영'을 할 만한 '산림' 자체가 빈약했기 때문이다.

특히 사업 대상지 대다수가 사유림이어서 효과적이고 통일적인 정책 추진이 쉽지 않았다.

산주마다 보유한 면적이 2㏊ 안팎으로 소규모인 데다, 대부분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에 한독기구는 토지·자본·인력의 공동 경영모델이 필요하다고 진단하고, 두서면과 상북면 산지를 대상으로 '사유림 경영협업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수차례 산주들을 만나 협업체 구성 필요성을 알렸고, 그 결과 총 4개의 산림경영협업체가 설립됐다.

이어 4개 협업체는 '고헌산 산림경영협업체 연합회'로 다시 뭉쳤다.

이들 협업체가 소유한 총 산림면적은 4천800㏊에 달했다.

"당시 전체 산주는 약 800명에 달했고, 그나마 500명가량은 다른 지역에 있는 '부재 산주'였어요.

부재 산주들에게 산림경영을 위탁받고, 지역에 있는 산주들을 설득해 협업체를 구성했죠. 산림경영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하고, 기타 생산물로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고 약속했었죠."
'민둥산 울산이 울창해진 40년전 한독산림사업을 아시나요'

이후 한독사업에 속도가 붙었다.

임분(주위 산림과 구분되는 숲 범위)과 수종 현황 파악, 숲 가꾸기 계획을 포함한 영림계획이 수립됐다.

이 계획에 따라 숲 조성, 천연림 보육, 묘목 키우기 등 사업이 추진됐다.

그 결과 사업 기간 동안 668㏊에 256만 그루의 나무가 심어졌고, 이는 현재 울창한 숲의 기반이 됐다.

부수적으로 나온 목재를 활용한 목탄 생산과 표고버섯 재배, 묘목 판매, 양봉 소득사업도 병행됐다.

산림경영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운반하도록 임도도 3개 구간에서 3.9㎞에 걸쳐 개설됐다.

협업체 수익이 회원 복지에 활용되면서 '산림경영을 통해 기술·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다'는 믿음도 퍼졌다.

무엇보다 한독사업은 산주들 스스로 체계적으로 산림을 경영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 성공적인 모델이 전국으로 보급되면서 우리나라 임업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이바지했다.

한독사업에 대한 소개는 10월 25일까지 울산대곡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기획특별전 '숲과 나무가 알려주는 울산 역사'에서도 접할 수 있다.

"1970∼198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만 생각하면 한독사업이 국가 주도적으로 이뤄진 수직적인 녹화사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산주를 중심으로 민간이 국가와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산림 조성과 경영을 이끌었죠. 그 모델이 성공을 거뒀고 전국에 전파돼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한독사업의 가치는 평가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
'민둥산 울산이 울창해진 40년전 한독산림사업을 아시나요'

한독사업 종료 후 양산사업소는 '산림조합중앙회 임업기술훈련원'이 됐고, 김 박사는 15년간 훈련원장으로 재직하고 퇴직했다.

은퇴 이후 몽골에서 수년간 사막화 방지를 위한 녹화사업에 참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백년숲 조합은 지속가능한 산림경영을 위한 체계적인 산림계획 수립, 산림경영자 등 인재 양성, 숲 공동체 육성 등을 추진하는 단체다.

경북 청도가 고향인 김 박사는 현재 한독사업이 진행됐던 상북면 소호리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겉으로는 평범한 전원주택인데 집 앞에는 '한독원'이라는 간판이 놓여 있다.

한독사업의 추억과 자긍심을 간직한 노학자는 자신의 젊음을 바친 상북면 한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채, 여전히 지역 산림을 보존하는 파수꾼을 자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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