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제2의 도시 만달레이 시계탑
미얀마 제2의 도시 만달레이 시계탑
미얀마 제1의 도시 양곤에서 북쪽으로 625㎞를 고속도로로 달려 8시간이면 미얀마 제2의 도시 만달레이에 도착한다. 만달레이는 양곤과 함께 매년 10월에 한국어능력평가시험(토픽·TOPIK)이 치러지는 도시이기도 하다. 만달레이의 첫인상이 양곤과 다른 것은 출퇴근 시간대 오토바이의 물결일 것이다. 사실, 오토바이가 도로를 가득 메운 다른 동남아시아의 대도시와 달리 양곤 시내에는 오토바이가 눈에 띄지 않는다. 1993년 오토바이 폭주족 사건으로 정부가 양곤 시내에서 오토바이 운행을 금지했고, 이 조치는 현재도 유효하다.

③ 미얀마 제2의 도시 만달레이

시내에 가득 찬 오토바이 물결로 인해 만달레이가 양곤보다 약간은 더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는 것은 아마 매우 개인적인 견해일 수 있을 것이다.
만달레이역
만달레이역

엄격했던 서방의 경제 제재

2001년 짐 로저스(Jim Rogers)라는 미국의 투자자가 이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는 미국과 유럽의 미얀마 경제 제재가 한참 진행 중이던 시기였다. 로저스는 한국과 일본에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2018년 과거 금강산 리조트를 운영한 적이 있는 한국의 한 코스닥 상장회사의 사외이사로 선임돼 그 회사의 주가가 치솟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반도가 5년 안에 통일된다며 본인의 전 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투자의 귀재’라고 세간에 알려져 있는 짐 로저스는 당시 37세인 1980년 월스트리트의 금융가에서는 공식적으로 은퇴했으니, 은퇴 이후의 공식 명함은 개인투자자에 가까울 것 같다. 로저스는 은퇴 후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전 세계를 돌며 투자 여행을 한다. 그의 저서 ‘어드벤처 캐피탈리스트(2003년 출간)’를 보면 그는 인도의 동쪽 마니푸르에서 자신의 자동차를 몰아 강을 건너고 정글을 헤쳐가며 2001년 3월 만달레이에 도착한다.

그는 책에서 미얀마 국민들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친절하고, 교육수준이 높고, 열심히 일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집이 당시 미얀마 제1 수출품인 티크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큰 감동을 받은 듯했다. 하지만, 인프라 등 도로 사정에 대한 불만은 많았다. 특히 서방의 경제제재 효과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이었다. 막상 본인이 가 보니 미국 제품과 경쟁하는 다른 나라의 제품이 수입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짐 로저스가 당시 만달레이에서 미국 제품을 거의 찾지 못했다는 것은 당시 미얀마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가 매우 엄격히 시행됐다는 것을 반증한다고도 할 수 있다.

개방 이후 중국인 급속도로 유입

짐 로저스 방문 후 19년이 지난 만달레이는 현재 어떻게 바뀌었을까? 우선 2011년 양곤에서 출발해 행정수도인 네피도를 거쳐 만달레이까지 고속도로가 개통됐다. 이 도로는 왕복 4차선 미얀마 최초의 고속도로이자 한국의 경부고속도로처럼 산업화의 중추 도로이다. 2012년 이후는 실질적인 개방정책의 여파로 만달레이도 급속하게 발전하게 된다. 많은 관광지가 개발됐고, 관광객이 몰리면서 수많은 특급호텔이 생겨났다. 미국의 경제제재도 풀리면서 세계 최대 미국의 호텔 기업이 운영하는 ‘힐튼 만달레이’도 문을 열었다. 또한 미얀마에서 원유를 중국으로 수송하는 송유관은 이곳 만달레이를 통과해 중국의 쿤밍(昆明)까지 연결된다. 이런 이유로 많은 화교 기업이 이 도시에 있고, 중국인이 계속 유입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짐 로저스가 2019년 이곳을 다시 왔다면 아마 ‘거봐. 2001년에 내가 미얀마 관광산업 분야에 기업인들이 재빨리 뛰어든다고 했잖아’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물론 2020년의 코로나19 사태는 예상을 못했겠지만….

물류 인프라 부족한 미얀마

미얀마를 구글지도에서 보면 북쪽을 기준으로 왼쪽으로는 인도, 오른쪽은 중국과 매우 긴 국경선을 접하고 있다. 비록 만달레이라는 미얀마 제2의 도시로 발전했지만, 2001년 짐 로저스가 통과한 ‘인도로 가는 길’은 여전히 비포장의 험난한 길이다. 비록 중국과 국경무역이 발달하긴 했지만 ‘중국으로 가는 길’ 역시 험난하며 국경 근처는 외국인 출입금지 지역이다. 유럽에서 국경을 자유롭게 건너는 것을 생각해서 배낭을 메고 미얀마에서 인도나 중국으로 국경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2019년 8월에는 만달레이에서 중국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도시인 라시오(Lashio) 근처 도로의 교량이 무장단체의 공격으로 붕괴돼 중국과의 교역이 일시 중단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가 칭찬한 도시, 만달레이
미얀마를 경제적으로 요약해 표현할 때 ‘자원부국, 인프라 빈국’이라는 말을 흔히 하곤 한다. 미얀마는 2012년 실질적 개방을 통해 경제발전을 하고 있고, 앞으로 제2의 베트남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다. 하지만, 인프라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위에 언급한 도로 사정 이외에도 미얀마에 아직 심해항(深海港)이 없어 해상 물류 수송에 타국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미얀마는 개방은 했지만, 국경을 통한 육상 물류나 바다를 통한 해상 물류 모두 개선해야 할 점이 아직 너무 많이 산적해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 제대로 된 도로가 있어서 경제발전을 했겠는가? 올해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오철 < 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

NIE 포인트

① 한국의 산업화가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시작된 것처럼 교통과 물류를 ‘경제의 동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② 인구대국으로 거대 시장인 중국 및 인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미얀마가 이들 두 국가와 국경을 통한 교역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왜일까.

③ 자원과 노동력이 풍부하지만 인프라가 부족한 미얀마가 적극적인 개방정책으로 ‘제2의 베트남’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