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조항 원안서 후퇴한 '기부금품법 시행령' 국무회의 의결
기부자 요청 시 사용명세 의무공개 → 요청 따르도록 노력
기부자 알 권리 높인다더니…'반쪽 공개' 그친 법령 개정안(종합)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후원금 부실회계 논란을 계기로 기부금 모금활동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가 추진한 관련 법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기부자 알 권리 강화를 위한 핵심 내용은 원안에서 크게 후퇴해 '용두사미'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행정안전부는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기부금품법) 시행령 개정안이 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개정안에는 모집자가 기부금품 모집·사용 정보를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기간을 현재 14일 이상에서 30일 이상으로 늘리는 내용 등을 담았다.

행안부나 광역자치단체 등 기부금품 모집 등록청도 기부금품 모집등록·사용승인 등 내용을 분기별로 공개하도록 했다.

이밖에 기부금품 모집 관련 서식 표준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개정안에는 그러나 기부자의 알 권리를 강화하기 위한 핵심인 '기부자 요청 시 사용명세 관련 정보 의무 공개' 내용이 빠졌다.

개정안 원안에는 '기부자가 자신의 기부금품을 접수한 모집자에게 기부금품 모집·사용 내용의 공개를 요청할 수 있고, 모집자는 요청을 받은 날부터 7일 안에 관련 내용을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하지만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개정안은 '기부자는 모집자에게 기부금품 모집·사용 등 장부 공개 요청이 가능하고, 모집자는 요청에 따르도록 노력한다'는 수준에 그쳤다.

기부자의 알 권리를 강화하고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보면 크게 후퇴한 것이다.

기부자가 공개 요청을 할 수 있는 정보의 종류가 구체화하면서 범위도 좁아졌다.

이전 안에는 '기부금품 모집·사용 내용' 공개를 요구할 수 있게 돼 있었는데 최종안은 기부금 모집·지출 명세서, 기부물품 모집·출급 명세서, 기부금품 모집비용 지출부 등 5종으로 정하고 모집 관련 명세서는 기부자 본인 것만 공개하도록 했다.

행안부는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후원금 유용과 엉터리 시민단체 '새희망씨앗' 사건 등을 계기로 기부 투명성과 기부자의 알 권리를 높이는 방향으로 2018년 시행령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당초 '기부자 요청 시 관련 정보 7일 이내 의무 공개'를 골자로 한 개정안을 지난해 6월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하고 보도자료까지 배포했으나 기부금 모집단체 측 반발로 이를 철회했다.

이후 모집단체 측의 의견을 수렴해 '7일 이내'를 '14일 이내'로 완화했지만 이후 법제처로부터 모법에 벌칙 적용 근거가 없다는 지적을 받고 의무공개 조항이 아예 빠지게 됐다.

애초에 개정안 설계를 잘못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행안부 관계자는 "(모집자 측 의견에) 끌려가면 안 되는데, 기부금을 모집하는 시민사회단체에서 의무공개 조항에 대한 반발이 심해 이를 반영하는 과정에서 원안보다 후퇴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행안부 관계자는 "원안보다는 완화됐지만 기부자의 알 권리를 처음 규정했다는 의미가 있다.

모집 명세서 공개범위를 기부자 본인 것으로 한정한 것은 다른 기부자의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향후 추가 제도개선 과제를 발굴하면서 필요 시 법률 개정도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기부자 알 권리 높인다더니…'반쪽 공개' 그친 법령 개정안(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