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도 억울한데 가족들 직장·학교에서 '출근·등교 말라'
정식 자가 격리 명령서도 받지 못해…언론 보도 통해 알아
자택격리 어려워 무더운 날씨에 컨테이너 격리 노동자만 17명
"항만 노동자 안심하고 근무할 수 있는 제도 개선돼야"
"아이들 등교도…" 러 선원 집단발병 최대 피해자는 항만노동자
집단 감염이 확인된 부산항 입항 러시아 선박 선원들과 접촉한 항만 노동자들이 자가격리 속 초조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부산항 하역 현장 근로자들의 단체인 부산항운노조는 '올 것이 왔다'는 예견됐던 공포가 현실화하면서 조합원의 낙담과 불안감이 크다고 전했다.

문제의 러시아 선박 하역 등에 투입된 노동자는 124명에 달한다.

24일 항운노조 한 관계자는 "서류 검역만 마친 외국 배에 오를 때마다 불안감이 컸는데 결국 이런 상황이 왔다"면서 "러시아 선원 접촉으로 자가격리된 노동자들은 혹시나 확진 판정을 받게 될까 봐 심리적으로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가격리자 가족들도 직장·학교로부터 출근과 등교를 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 한 관계자는 "자기 때문에 가족들이 피해를 보는 것 같아 자책하는 노조원도 있고, 가족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항만 컨테이너에서 자가 격리한 분도 있다"고 말했다.

감천지부 노조원 중 자택 격리조차 어려워 컨테이너에서 집단 자가격리한 인원은 17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아이들 등교도…" 러 선원 집단발병 최대 피해자는 항만노동자
다른 노조원들이 이들에게 음식을 공급하며 격리를 도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보건 당국에서는 22일 오전 격리 장소를 별도로 제공하고 이들을 옮긴다는 방침이다.

전날까지 27명의 검사자 중 이들 17명은 우선 검사 대상에 포함돼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노조 한 관계자는 "저는 격리 대상자도 아닌데 항운노조라는 이유로 연락을 많이 받았는데 격리자 분들은 오죽하시겠느냐"면서 "아직 정식으로 자가 격리 명령서도 받은 사람이 없고 언론을 통해 당국이 자가격리라고 하니 집에 머무는 상황인데 임금 보전이나 경제적 지원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을 해줘야 조합원이 안심한다"고 밝혔다.

21일 오후부터 운영이 중단된 감천 1, 3부두를 제외하고는 부산항 북항과 감천항에서는 여전히 항만 노동자들이 외국 배에 승선해 작업하고 있다.

이들의 불안감을 없애려면 제도 개선이 꼭 수반돼야 하는 상황이다.

집단 감염이 발생한 '러시아 선박'은 선사 신고에만 의존해 서류 검역이 이뤄진 탓에 문제가 됐는데 이날 부산항 입항 검역 대상 46척의 선박 중 10척은 서류 검역 대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역관 인력의 한계로 모든 선박에 '승선 검역'을 할 수는 없지만, 현실에 맞는 지침이 서둘러 나와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검역 정책이 공항 중점적으로 이뤄져 항만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점은 이번을 계기로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