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완벽할 수 없어…실수 발생하면 시스템 취약점 규명해야"
기술고도화에도 끊이지 않는 철도사고…10건중 4건 원인 '사람'
지난 11일 오전 10시43분 서울 노원구 지하철 4호선 상계역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출발하려고 정차 중이던 열차를 후행 열차가 추돌했다.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노원역부터 당고개역까지 상행선 구간 열차 운행이 한동안 중단돼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약 400명의 부상자를 낸 2014년 2호선 상왕십리역 열차 추돌사고, 같은 해 태백선 열차 충돌 사고, 2016년 여수 무궁화호 탈선 사고 등 크고 작은 철도사고는 과거부터 끊이지 않고 있다.

철도사고 원인으로는 시스템 미비, 기계 결함 등 다양한 요인이 지목되지만, 이를 운용하는 사람의 문제에서 비롯한 '인적 오류'(human error)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는 지적이 나온다.

철도사고는 자동차 사고 등과 비교해 빈도는 낮으나 한 차례 사고만으로도 막대한 피해를 낼 수 있는 만큼 인적 오류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기술고도화에도 끊이지 않는 철도사고…10건중 4건 원인 '사람'
◇ 최근 8년간 철도사고 40% '인적 요인'
철도사고는 기술 고도화 등으로 차츰 줄어드는 추세지만 매년 끊이지는 않는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올해 4월 발간한 '철도사고조사 통계 및 조사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철도사고는 2012년과 2013년 각 10건, 2014년 14건이었고 2015∼2019년에도 연평균 6.2건 발생했다.

열차 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철도사고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항공·철도 사고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의하는 철도사고는 ▲ 열차 충돌·탈선 ▲ 철도차량 또는 열차 화재에 따른 운행 중지 ▲ 철도차량 또는 열차 운행과 관련해 3명 이상 사상자 발생 ▲ 철도차량 또는 열차 운행과 관련해 5천만원 이상의 재산피해 등 4가지 경우다.

눈여겨볼 것은 이같은 사고 원인 가운데 담당자의 과실 등 인적 요인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2012년부터 올해 4월까지 이 위원회의 철도조사팀이 담당한 철도사고 66건 중 39%에 해당하는 26건에서 인적 오류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국교통대의 정의에 따르면 인적 오류란 인간이기에 범할 수 있는 실수로서 과오·착각·망각·피로·발작 등이 원인이다.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기억의 문제로 생기는 오류, 행동 실수, 작업 규정이나 절차를 의도적으로 위반해 발생한 오류 등으로 세분된다.

철도사고에서는 탈선, 열차 추돌, 시설정비 미흡 등이 포함된다.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1명이 숨지고 90여명이 다친 2014년 7월 22일 태백선 열차 충돌사고는 기관사가 휴대전화를 꺼야 하는 규정을 어기고 운행 중 카카오톡을 하는 등 부주의가 원인이었다.

같은 해 신호기 오류로 발생한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열차 추돌사고도 인적 오류에서 비롯했다.

신호 관련 장비의 오류를 발견하고도 제때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신호팀 직원과 관제사들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철도는 많은 인원이 동시에 이용하는 교통수단인 만큼 사고 발생 횟수가 많지 않아도 피해가 크다.

최근 9년간 철도사고 사망자는 6명, 부상자는 601명이었으며 재산피해는 약 2천80억원에 달했다.

기술고도화에도 끊이지 않는 철도사고…10건중 4건 원인 '사람'
◇ 개인의 책임의식·안전 운행 여건 조성 필요
서울교통공사의 한 승무원은 22일 "열차 운행의 많은 부분이 자동화되다 보니 기관사들이 운행 중 휴대폰을 사용하거나 다른 업무를 보는 등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현장에서 인적 오류가 일으킬 수 있는 사고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공사에서 관제 실무를 담당했던 또 다른 직원은 인적 오류가 사고 원인 중 하나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실제 현장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며 "사람이 항상 조심하다가도 잠깐 실수하면 발생하는 것이 사고이기 때문에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억 오류, 상황판단 오류 등 인적 오류는 주로 스트레스나 피로 등에서 기인하는 만큼, 단순히 사람이 범하는 실수로 취급하지 말고 이를 유발하는 조직·환경적 요소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공공연구원은 2017년 발표한 '국내 도시철도 승무분야의 노동실태 연구' 보고서에서 도시철도 승무원들이 처한 노동환경과 조직문화를 지적한 바 있다.

교번제에 따른 불규칙한 근무 패턴과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인간이 보완해야 하는 상황, 징계 중심의 징벌주의적 조직문화로 승무원들이 겪는 스트레스와 부담이 업무 때 인적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휴먼 에러'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사고가 나면 현장에서 일하는 개인에게 사고 책임을 덮어씌우고 있다"며 "조직은 승무 노동자들이 실수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다양한 안전 시스템을 구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실수가 발생한다면 어떤 시스템의 취약점 때문인지를 따져 규명하고 인간은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조직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