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에 걸쳐 유물 약 1만9천점 부산으로 반출
'6·25전쟁과 문화유산 보존' 심포지엄, 19일 국립고궁박물관
전쟁의 화마 속 치열했던 문화유산 수호 작전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남침하자 당시 국립박물관 김재원 관장은 박물관 진열장에 있던 진열품을 창고에 격납하도록 했다.

29일께 북한 조선 물질문화 유물조사보존위원회가 국립박물관을 장악했고, 이북으로의 운반을 계획했다.

보존위원회가 진열품 소개령을 내렸지만 김 관장은 이에 반대해 유물 1천228점을 덕수궁미술관 지하 창고로 옮겼다.

이후 전세가 바뀌어 9월 24일 보존위원회가 도주하자 박물관 직원들은 북한군이 퇴주한 27일까지 덕수궁에서 합숙하면서 유물을 지켰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오는 19일 오후 1시 30분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 채널을 통해 '6·25전쟁과 문화유산 보존' 학술 심포지엄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한다.

전쟁과 문화유산 보존·관리 간의 영향 관계를 조명하고, 재난 대비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에 대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다.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 장상훈 과장은 이날 '6·25전쟁 시 국립박물관의 문화유산 수호'를 주제로 발표한다.

미리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9월 28일 서울 수복 이후 1950년 10월 중공군의 참전으로 다시 전세가 역전되자 박물관 소장품은 12월 피난길에 오른다.

덕수궁미술관에서 서울역까지는 미군이 마련해준 트럭을 이용했고, 12월 7일 화물열차에 올라 나흘 만에 부산에 도착했다.

전쟁의 화마 속 치열했던 문화유산 수호 작전

부산역에 도착한 뒤 유물은 부산의 미국 공보원(현재 부산근대역사관) 앞뜰 창고에 임시 보관됐고, 이후 광복동 경상남도관재국 소관 건물로 옮겨졌다.

이로써 국립박물관과 덕수궁미술관 소장품은 안전하게 보관될 수 있었다.

1950년 12월에는 이렇게 두 차례 소장품 소개 작업이 진행됐다.

이듬해 3월 16일 유엔군이 서울을 재탈환하자 국립박물관은 다시 3월 29일 당시 국립박물관에 근무하던 최순우와 덕수궁미술관장 이규필을 비행기로 서울로 들여보내 중앙아시아 출토품을 4주간에 걸쳐 부산으로 옮겨왔다.

최순우는 1974년 '31본산 재산대장'이란 제목의 서울신문 기고문에서 "칠흑 같은 밤 경복궁 안에서는 아군의 155㎜ 포열 수십 문이 불과 100m 거리에서 밤새도록 북방을 향해서 으르렁거렸고…나는 이들 문서를 단지 혼자서 한밤 내 묶어내야만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문화재 소개 작업은 1951년 5월 12일을 포함해 총 4차례 진행됐고, 국립박물관과 덕수궁미술관 중요 소장품 430상자분 1만8천883점은 부산에서 안전하게 보관될 수 있었다.

김재원 관장은 저서 '박물관과 한평생'에서 "내 일생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우리 직원들과 함께 동산 문화재의 거의 전부를 전쟁의 와중에서 무사히 보관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6·25전쟁과 문화유산 보존' 심포지엄에서는 김영나 서울대 교수가 '전쟁과 문화재, 전쟁과 기억'을 주제로 기조 발제한다.

이어 '전쟁과 문화유산: 전후 복구와 문화유산 제모습 찾기'(장호수·백제역사도시), '6·25전쟁으로 인한 사찰과 성보 문화재의 피해 및 복구 노력'(김추연·대한불교조계종), '전시 군(軍)의 문화재 보호 사례'(이학수·한국해양대학교), '전쟁으로부터 문화재 보호의 게으르지 않은 역사'(김병연·문화재청) 등이 발표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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