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저가 입찰제 아닌 표준 입찰제가 해법" 주장
"사고 책임자 처벌 강화…노후설비 안전관리 특별법 도입해야"
[산업현장 폭발 그후]② 안전과 맞바꾼 '무모한' 비용절감
탐사보도팀 = "폭발사고 이후 특별히 달라진 건 없어요.

사고 직후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지만, 유족과 합의 후 생산시설은 다시 가동됐습니다.

사람이 죽는 사고가 나도 현장은 잘 안 바뀌어요.

"
한 화학공장에서 폭발사고로 동료를 잃은 A씨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폭발사고 후에도 좀체 변하지 않는 산업현장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A씨는 폭발사고로 동료 1명을 잃었다.

다른 동료 2명은 크게 다쳤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은 동료의 유족은 회사와 보상 문제로 갈등했다.

피해자를 대신해 노동조합이 합의를 시도했지만, 회사 측은 유족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보상 금액만 통보하고 등을 돌렸다.

노조가 항의 집회를 여는 등 반발하자 회사는 마지못해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았다.

사망자의 시신은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12일간이나 장례식장에 안치되어 있었다.

A씨는 그 폭발 사고가 '인재'(人災)라고 했다.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한 현장에 비숙련자를 고용해 인건비를 줄이는 등의 편법이 사고를 불렀다는 주장이다.

현장 인력 모집책 일도 해봤다는 A씨는 "보통 17만5천원씩 일당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기술자를 모집하라고 한다.

그런데 20명을 충원한다고 했을 때 실력 좋은 기능공은 한두명만 뽑고 나머지는 일당 12∼13만원인 초보자나 아르바이트생을 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술자 한두 명이 이들을 다 관리하지도 못하는 데다, 로프 하나 제대로 묶을 수 없는 비숙련자들이 현장에 투입돼 일하다가 대형사고가 벌어진다"고 개탄했다.

대기업 사업장에서도 이런 방식의 '위험한 비용 절감'이 만연했으며, 이런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참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산업현장 폭발 그후]② 안전과 맞바꾼 '무모한' 비용절감
안전관리자의 전문성 부족도 폭발사고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A씨는 "엔지니어 출신이 아닌 사무직 안전관리자가 영상과 책만 보고 공부한 뒤 일을 맡다 보니 현장을 잘 모른다.

반드시 분리해서 진행해야 할 작업을 통틀어 언제까지 끝내라고 지시한다"며 "조심해서 안전하게 하라는 당부를 하지만 이런 일 처리 방식으로 안전을 확보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2011년 이후 지난해까지 1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폭발사고는 모두 67건으로 연평균 7.4건이 발생했다.

올해 들어서도 5월까지 총 5건의 폭발사고로 7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 산업현장에 만연한 '안전불감증'…번거로운 안전조치 생략하기도
안전 조치를 생략하거나 느슨하게 또는 미숙하게 해서 벌어지는 사고도 적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용접 작업 전에는 안전을 위해 반드시 파이프나 탱크 안에 있는 물질을 제거하는 '퍼지' 작업을 한다.

독성이 있거나 폭발하기 쉬운 가스를 사용하는 관·탱크에는 가스가 새지 않도록 밸브를 두 개씩 설치하는데, 그 밸브가 오래되면 가스가 샐 수 있어 이를 막아주는 '블라인드 패치'를 중간에 끼운다.

부품 자체는 비싸지 않지만, 작업을 할 때마다 설치와 해체를 반복하는 것이 번거롭고 작업 시간도 길어진다.

일부 작업장에서는 이런 번거로움을 피하려고 아예 블라인드 패치를 설치하지 않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고 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원청 업체가 퍼지 작업을 마쳤다고 통보해 용접을 시작했다가 폭발 사고가 난 적이 있다.

안에 남아 있던 가스가 노후한 밸브를 통해 새어 나왔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산업현장 폭발 그후]② 안전과 맞바꾼 '무모한' 비용절감
노조는 지난 3월 4일 롯데케미칼 공장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도 무리한 비용 절감 시도가 부른 참사라는 의혹을 품고 있다.

롯데케미칼 공장 폭발로 인한 부상자는 총 56명에 달했다.

용접하고 난 뒤에는 기포나 균열 등 문제가 있는지 엑스레이를 찍어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내부고발자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에서 비용 절감을 이유로 이 검사를 생략하도록 내부 지시를 내린 적이 있다는 주장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검사를 생략한 것이 폭발 사고에 큰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당시 이런 내용을 조사하기 위해 노조가 노동부의 허가를 받아 조사단에 합류했지만, 회사 측은 노조원이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 제대로 조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안전 비용과 사고는 정확히 반비례한다.

비용을 들일수록 사고는 줄고 비용을 절감할수록 사고는 늘어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롯데케미칼 측은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노조 측에서 제기하는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며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 당국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고, 피해 지역 복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 "최저가 입찰제 문제…사후 조치도 미흡"
노동계는 안전 관리·교육 소홀로 산업 현장에서 폭발사고가 계속되는 것이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또 비용을 줄이기 위해 표준입찰제가 아닌 최저가 입찰제를 고집하는 것도 한 원인으로 꼽았다.

김택권 한국노총 플랜트 분과 울산본부장은 "최저가 입찰제가 적용되다 보니 숙련공이 필요한 현장에서조차 인건비를 줄이려 비숙련공을 투입하는 문제가 생긴다"며 "전문인력 4명이 필요한 곳에 2명만 투입하기도 한다.

이 경우 숙련공이 과도한 양의 작업을 떠안고 무리하게 작업하게 되고, 그러다가 사고가 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폭발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에서는 안전 관리를 발주처 직원이 하지 않고 도급업체가 하는 경우가 많다.

표준입찰제도를 시행해 업체가 사람을 적재적소에 쓸 수 있도록 하고 재하도급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업현장 폭발 그후]② 안전과 맞바꾼 '무모한' 비용절감
폭발사고 발생 후 조치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상진 민주노총 플랜트노조 전북지부장은 "비슷한 유형의 폭발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올해를 이른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민노총이 구상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의 골자는 사업주와 법인, 기관의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상 위험 방지 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가 목숨을 잃을 경우 3년 이상 징역이나 5억원 이하 벌금 등 강력한 처벌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사업주 측이 안전수칙을 지킬 수밖에 없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면서 "특히 설비 노후화로 인한 폭발 사고를 막으려면 '노후설비 안전관리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량이나 댐 등 공공시설물에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적용되는 것과 같은 방식의 법률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후설비에 대한 관리 책임을 사업주에게만 지우지 않고 정부와 지자체에 관리·감독 권한을 주는 한편, 중소 사업장에는 관리 비용도 지원하는 내용을 새 법에 담아야 한다고 노동계는 주장한다.

[산업현장 폭발 그후]② 안전과 맞바꾼 '무모한' 비용절감
산업안전감독관의 권한을 '노동경찰' 수준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 지부장은 "산업 현장 전문가인 산업안전 감독관이 사고 조사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못 하고 있다"며 "소방당국의 1차 조사 후 2차로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에서 조사하는데 이들 기관은 산업 현장을 잘 모른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율촌 조상욱 변호사는 "산업안전 감독관의 권한을 강화하고 전문성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기소권을 가진 검찰과 감독관의 권한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