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조합 조합원의 자녀를 특별채용하도록 한 단체협약 규정이 유효한지를 놓고 대법원이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원고인 노조원 유족 측과 피고인 현대·기아차는 해당 협약으로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가 침해되진 않는지, 민법 제103조가 규정한 '사회질서'에는 위배되진 않는지 등을 두고 팽팽히 맞섰다.

대법원은 17일 업무상 재해로 숨진 이모씨의 유가족이 현대·기아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 대한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이씨는 벤젠에 노출된 상태로 기아차에서 근무했고 이후 현대차로 옮겨 일하던 중 업무상 재해로 사망했다. 유가족은 '조합원이 산재로 사망할 경우 결격사유가 없는 직계가족 한 명을 특별채용' 하도록 한 단체협약 규정을 근거로 이씨 자녀를 채용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1·2심은 "해당 규정은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를 현저히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이날 원고 측은 단체협약이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의 한계를 명백히 벗어나지 않는 한 그 효력은 유효하며 해당 규정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관점에서 공정성에도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원고측 소송 대리인은 "망인은 급성 백혈병을 앓으며 항상 가족들을 걱정했고 그 자녀는 회사로부터 채용을 외면당했을 때 너무 원망스러웠다고 한다"며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해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인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피고 측은 해당 규정이 채용의 자유뿐만 아니라 청년들의 취업할 권리도 제한한다며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공정의 가치를 해친다고 주장했다. 피고측 소송 대리인은 "이 사건 단체협약이 도입됐던 25년여 전과 달리 지금은 일자리 한 자리 한 자리가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현대·기아차의 구직 경쟁률은 심할 때는 700대1에 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는 2013년 7월 생산직 공개채용을 한 차례 실시한 뒤 채용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그럼에도 2013~2015년 단협으로만 10여명을 채용한 만큼 이것은 채용의 공정성을 세우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날 대법관들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대법관들은 "(해당 단체협약은) 법리적인 측면과 현실적인 측면을 종합해 고민해야 한다"며 "공정의 원칙,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과 당사자들에 미치는 영향 등을 면밀히 검토하기 위해 공개변론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