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이용해 만든 첫 무용 '비욘드 블랙' 안무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동작을 똑같이 할 수 있겠어'라는 의구심이 처음에는 들었어요.

하지만 AI가 딥러닝을 거듭할수록, 신기하게도 무용수의 스타일이 춤에 나타났습니다.

그 사람의 디테일한 특성까지 잡아내더군요.

"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AI를 활용해 무용 작품을 만든 신창호 안무가(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는 최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국립현대무용단과 함께 오는 26~27일 인공지능 안무작 '비욘드 블랙'을 선보인다.

'비욘드 블랙'은 신창호 안무가가 만든 조어다.

"암흑을, 미지를 넘어서는 알 수 없는 미래를 준비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AI를 활용해 무용을 만드는 과정과 앞으로 AI가 예술계에 미칠 영향을 시사하는 제목이다.

안무가 신창호 "AI가 무용수의 디테일마저 잡아내더군요"
AI로 동작을 만들기 위해선 크로마키를 배경으로 무용수 8명의 움직임을 촬영해야 한다.

동작은 '빠르고 부드럽게' '빠르고 강하게' 이런 식으로 나눠서 컴퓨터에 데이터값을 입력한다.

AI는 무용수들의 이런 동작을 스스로 학습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뼈와 관절을 점과 선으로 인식한 AI는 처음에 조금은 괴이한 동작을 만들어냈다.

무용수들이 구현하기도 부자연스러웠다.

그러나 학습을 진행하면 할수록 진짜 무용수들의 동작과 유사해졌다고 한다.

"AI가 학습을 진행할수록 원래 무용수의 동작과 비슷해졌어요.

일대일 카피는 아닌데, 중복되지 않는 동작으로 어떤 일정한 패턴을 만들어내더라고요.

해당 무용수들에게 물어보니, 자신들이 무의식중에 사용하는 동작과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
AI는 수치화된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딥러닝해 새로운 안무를 만들어냈고, AI가 만들어낸 안무는 신창호 안무가의 수정작업을 거쳐 무용수들이 다시 학습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현재는 막바지 편집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창호 안무가와 국립현대무용단은 지난 10~13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영상으로 촬영하다 보니 처음에는 조금 어려웠어요.

앵글을 잡는 데 있어 안무가가 주안점을 두는 부분과 촬영감독이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조금씩 달랐죠. 중간에 매개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영상도 알고, 무용도 아는 사람이요.

그래서 LDP 무용단 출신인 이용우 배우가 긴급 투입되었죠."(웃음)
안무가 신창호 "AI가 무용수의 디테일마저 잡아내더군요"
국내에서뿐 아니라 AI 무용은 해외에서도 다뤄진 적이 거의 없다.

영국 안무가 웨인 맥그리거 정도가 AI를 활용해 무용을 만들었다.

그는 과학과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예술세계를 개척한 안무가로 유명하다.

신창호 안무가도 맥그리거처럼 지난 2015년부터 인간과 기계를 화두로 한 무용을 선보이고 있다.

2015년 '그레잉', 2018년 '맨 메이드', 2019년 'IT'를 선보인 데 이어 이번에 그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비욘드 블랙'을 내놨다.

그가 처음부터 과학기술에 천착했던 건 아니다.

신창호 안무가는 한국 현대무용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무용단인 LDP 무용단 창단 멤버다.

지난 2009년부터 20014년까지는 이 무용단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이라크전을 소재로 그가 2002년에 만든 '노 코멘트'(No comment)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발레단의 고정 레퍼토리로 수출됐다.

한국 현대무용이 유럽 발레단의 고정 레퍼토리로 수출된 건 처음이었다.

예술가로서 현실 참여는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그러나 예술가로서 형식적 측면에서 한계에 부딪힌 현대 무용에 새로움을 불어 넣을 필요도 있었다.

그는 과학기술과 테크놀로지로 눈을 돌렸고, 이제는 그 결과물로, 첫 AI 무용을 만들어냈다.

"지금은 AI가 만들어놓은 안무를 인간이 재학습하는 단계지만 언젠가는 AI가 직접 춤도 추지 않을까요? 방식은 정확히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가령 다양한 무용 프로그램이 담긴 칩을 뇌에 심은 인간이 추는 춤도 AI 무용으로 분류될 수도 있겠죠. 물론 그 과정에서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문제가 발생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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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신창호 "AI가 무용수의 디테일마저 잡아내더군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