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출신 피란민 청년이 방어진 배경으로 작곡…'사랑 노래'라는 설도
방어진 청소년들 주축으로 '리메이크' 작업 후 올여름 공연 계획
[6.25전쟁 70년] 울산 유일 피란민 노래 '방어진 블루스'
'사랑이란 허무한 물거품이냐, 눈물 젖은 넥타이를 어루만지며 오늘도 불러본다.

방어진 블루스'
울산 방어진을 중심으로 6·25 전쟁 때 불리던 노래 '방어진 블루스' 가사 일부다.

지금은 울산 시민에게조차 낯선 이 노래가 70년이 지난 지금 재탄생을 준비하고 있다.

◇ 피란민 청년이 만든 노래…'못 이룬 사랑' 담았다는 설도
울산지역 향토학자와 문예인 등에 따르면 이 노래는 6·25 전쟁 발발 후 울산 방어진으로 피난 온 함경도 출신 청년 박용익 씨가 방어진 풍광을 배경으로 만들었다.

방어진 항구와 바다, 등대가 있는 산 등을 가사에 담아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못 이룬 사랑 노래라는 설도 있다.

그가 방어진으로 피란 와 한 선주의 딸을 사랑하게 됐으나, 선주가 반대해 이뤄지지 않았고, 여인이 다른 남자와 약혼하자 신세를 한탄하며 지었다는 것이다.

방어진 블루스는 처음에 피난민들 사이에서 불리다가 토박이들 입에도 붙어, 술집 뒤풀이 때면 자연스럽게 합창했다.

잠시 인기를 끄는 듯했으나, 1953년 휴전협정과 함께 피란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노래도 서서히 잊혔다.

박씨도 어디론가 떠났는데, 이름 말고는 남아 있는 신상 정보가 없다.

이후 방어진 사람 일부가 흥얼거리는 정도로만 전해지던 이 노래는 울산 1세대 대중음악 연주자인 고(故) 이일우 씨가 채보(악보를 만들거나 모으는 것)해 자료로 남았다.

악보를 소장한 장세동 울산 동구문화원 지역사연구소장은 "당시 모 방송국 소속이던 이일우 씨가 방어진 출신으로 울산상공회의소에서 근무했던 김원등 씨 등이 부르던 것을 악보로 옮겼다"며 "채보 시기는 1970∼80년대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방어진 블루스는 울산에선 6·25 전쟁과 관련한 하나뿐인 노래다.

[6.25전쟁 70년] 울산 유일 피란민 노래 '방어진 블루스'
◇ 랩으로, EDM 버전으로 재탄생…청소년 동아리가 주축
잊힌 노래 방어진 블루스에 다시 주목한 것은 울산 동구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 동아리다.

학생들을 지도하던 이진규 동구진로지원센터 사무국장이 올해 초 동구청 소식지 편집회의에서 이 노래 존재를 알게 됐고, 청소년 힘으로 복원하면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해 노래 사연을 재해석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 사무국장은 "'눈물 젖은 넥타이를 어루만지며'라는 가사를 보며 한 피란민 청년이 말끔히 차려입고, 사랑하는 여인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으나 퇴짜를 맞고 슬피 우는 장면이 떠올랐다"며 "애달픈 심정을 다양한 장르로 해석해보자고 아이들에게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문화의집 청소년들과 이 문화의집 출신 청년 음악 활동가들을 찾아 '방어진 블루스 복원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음악 교육가 졸업생, 실용 음악학부 대학생, 프로듀서, 고등학생 등이 역할을 나눠 악보를 복원하고 원곡 버전, DJ 버전, 랩 버전 등 다양한 장르로 방어진 블루스를 리메이크 중이다.

우선, 오리지널 버전은 1차 데모 녹음이 끝났다.

방어진고 출신 실용 음악학부 대학생 임혜원(25) 씨가 색소폰과 드럼에 목소리를 얹어 올해 3월 1절만 녹음했다.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녹음실 사용이 제한돼 추가 작업에 시간이 걸렸으나, 이달 안에 데모 녹음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여기에 고등학생이 만든 랩과 DJ·프로듀서가 편곡한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lectronic Dance Music) 버전 등이 완성되면 문화의집 청소년동아리가 연습해 올여름 일산해수욕장 등에서 공연할 계획이다.

이 사무국장은 "6·25 전쟁은 70주년이라는 시간이 말해주듯 요즘 아이들에겐 교과서에서만 존재하는 역사일지 모르지만, 사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세월의 벽을 넘어 신선한 자극이 될 만하다"며 "조선소만 있는 것 같은 동네가 피란민의 고향과 같은 곳임을 청소년들이 알아가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고 15일 말했다.

다음은 방어진 블루스 가사.
밤은 깊어 고요한 선창가에서 / 어디로 가려나 고동이 운다 / 등대 산에 아롱진 애달픈 하소 / 오늘도 불러 본다 방어진 블루스
사랑이란 허무한 물거품이라 / 눈물진 넥타이 어루만지며 / 월봉사의 저녁 종소리 어루만진다 / 오늘도 불러 본다 방어진 블루스
[6.25전쟁 70년] 울산 유일 피란민 노래 '방어진 블루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