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합니다' '인구론' 이어 등장한 신조어…문사철·非상경 학과 '협문'으로 조롱
취업여건 나은 상경계는 '광문'…전문가들 "취업난에 두려운 학생들 '내부 총질'"
취업난에 문과도 계층 구분?…'협문-광문' 나누는 대학가
"협문들아. 졸업장 어떻게든 세탁해보려고 공대 찔러보지 마라."
한국사회의 인문계 기피현상을 보여주는 '문송합니다'(문과라 죄송합니다), '인구론'(인문계 졸업생의 90%가 논다) 등 신조어가 수년 전 등장한 데 이어 최근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인문계열 학과를 '협문'이라고 부르며 조롱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5일 대학가에 따르면 협문은 '협의의 문과'를 줄인 말로, 그간 문·사·철로 불려온 인문계열 학과와 정치외교학·언론정보학 등 비(非)상경계열 학과를 통칭하는 말이다.

함께 등장한 표현으로 '광문'이 있다.

'광의의 문과'의 줄임말인 광문은 경영·경제 등 상경계열 학과에 쓰인다.

협문은 2017년께 온라인상에 등장해 최근 일부 대학 커뮤니티와 대학입시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처음에는 학부 과정에서 수학 계산을 하지 않는 전공인 점에 초점을 맞춰 '좁은 의미의 진짜 문과'라는 의미로 사용됐으나 최근에는 취업률이 저조한 인문·사회계열 학과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선배도 손절하는 협문'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에서는 "교육학을 본 전공하고 경영학을 이중전공한 미래에셋대우 박현주 사장도 경영대에만 기부한다"는 내용이 담겨 학생들의 유머 소재로 사용됐다.

언론정보학과 재학생 원모(22)씨는 "문과도 이제 둘로 나눠서 구분하는 걸 보면 '문송합니다'가 옛날 말이 됐다"며 "상경계가 인문계보다는 (취업하기에) 낫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말 같다"고 말했다.

한문학과 재학생 김모(23)씨는 "학벌 경쟁으로 대학에 입학하니 다시 내부에서 취업률로 학과를 줄 세우려는 것 같다"며 "일부 학생들이 비뚤어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광문으로 분류되는 상경계열 학생들은 인문계열보다는 여건이 나은 점을 인정하면서도 취업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았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이모(23)씨는 "광문이라고 취업 걱정을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취업이 어려워 다들 고시나 공인회계사 시험 준비를 한다"며 "취업문이 좁아지다 보니 취업에 불리한 인문계열 학생들을 공격하면서 안도감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단어 같다"고 말했다.

경제학과 국문학을 이중전공한 차모(23)씨는 "상경계가 취업할 기회가 더 다양하게 있긴 하다"면서도 "학부 수준에서 인문계열과 상경계열이 배우는 내용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니 인문계열 학생들이 진로를 다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취업난에 문과도 계층 구분?…'협문-광문' 나누는 대학가
지난해 말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2018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에 따르면 경제·경영학이 포함된 사회계열의 취업률은 64.2%로 인문계열 57.1%보다는 높았지만 전체 취업률 67.7%에는 못 미쳤다.

전문가들은 협문에 대한 조롱 현상은 취업난으로 불안을 느끼는 청년들이 특정 대상에 대한 불만과 공격성을 드러내는 데서 비롯한다고 진단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교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계층화가 이제는 전공에 따라 더 세밀히 계층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이 취업난으로 두려움을 느끼면서 '내부 총질'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경회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취업이 안 돼 학생들이 '협문'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라면서 "문과 과목을 협의와 광의로 나누는 것은 전통적 학문 분류 방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