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땅끝마을 공부방 폐쇄 위기 극복…학생들 13년째 저금통 기부
[#나눔동행] 문근영 후원받은 공부방 아이들 돌려주는 나눔 실천
전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에는 매년 1월이면 묵직한 동전 꾸러미를 든 어린 손님들이 찾아온다.

이들은 13년째 저금통 기부를 이어오는 해남 땅끝지역아동센터 학생들로, 어떤 고액 기부자보다 반가운 얼굴이다.

2008년부터 형과 누나, 언니와 오빠들이 실천한 것처럼 아이들은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자 용돈과 차비를 아껴 나눔과 기부를 잇고 있다.

주민 대부분 농·어업에 종사하는 땅끝마을에 부모가 귀가할 때까지 아이들이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공부방이 최초로 문을 연 것은 2003년 3월.
미국에서 건너온 선교사 헬렌 킴이 교회를 설립하고 공부방 운영을 시작했다.

무상 임대로 3년간 운영하며 공부방을 찾는 아이들이 50명 가까이 됐으나 건강상 이유로 선교사가 떠나고 건물도 매각되면서 당장 옮겨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나눔동행] 문근영 후원받은 공부방 아이들 돌려주는 나눔 실천
마침 지역 언론에 작게 실린 공부방의 이야기를 접한 배우 문근영씨 부모님이 2016년 10월 땅끝마을을 찾았고 그해 12월 다시 피자 10판을 들고 이곳에 왔다.

문씨 부모님은 당시 공부방을 운영하던 배요섭(64) 목사에게 인근에 땅을 매입했으니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써달라고 제안했다.

문씨가 토지와 건축비, 통학 차량 등 3억원 상당을 기부하면서 공부방은 땅끝지역아동센터로 다시 태어났다.

서울의 한 업체가 에어컨과 세탁기 등을 기증했고, 송지중 교사들이 책장도 마련했다.

아이들은 그때 받았던 나눔의 소중함을 기억하며 저금통에 용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달콤한 과일을 보내준 후원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학교에서 칭찬받고 기분이 좋아서, 상장 부상으로 받은 문화상품권을 자랑하고 싶어서….
이처럼 저금통에 용돈을 모아 기부하는 이유는 10가지도 넘는다.

교사들과 졸업생들도 매년 연말이 되면 집에서 모은 저금통을 센터로 보낸다.

2008년 17만9천550원에서 출발한 저금통 기부는 첫 나눔을 실천한 학생이 벌써 대학생이 된 시간을 거쳐 총 592만410원에 도달했다.

[#나눔동행] 문근영 후원받은 공부방 아이들 돌려주는 나눔 실천
아이들의 나눔은 저금통을 통해서 뿐만이 아니었다.

돌봄을 받던 학생이 자라 동생들을 보살피는 언니·오빠이자 선생님으로 센터에 돌아오는 일도 많았다.

배다혜(31) 땅끝지역아동센터장도 아이들과 학창 시절을 보낸 언니·누나였다.

중학생 무렵 아버지인 배요섭 목사가 마을 이장님들의 추천을 받아 센터를 본격적으로 운영하면서 배 센터장에게는 서른 명 넘는 동생들이 생겼다.

아이들의 숙제와 시험공부를 돕고 함께 목포 대형마트, 영화관으로 나들이를 하며 신이 났던 소녀는 이제 아이들이 빈집에 쓸쓸히 있지 않도록 매일 밤늦도록 센터의 불을 환하게 켜놓는다.

생활 복지사와 급식 도우미, 보조 교사도 센터의 졸업생들이다.

교사들은 보호·교육·정서 지원·문화·지역사회 연계 등 5가지 영역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강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시골이라 졸업생들이 직접 자격증을 따 축구·댄스·요리·공예 수업 등을 진행한다.

배 센터장은 13일 "센터가 알려지면서 후원이나 사회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며 "아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치고 주는 기쁨 또한 알려주고 싶어 기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도시만큼이나 시골도 맞벌이 등으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많은데 체계적인 돌봄을 받으며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크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며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