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서 김앤장 변호사 자필메모 증거로 제시

2015년 12월 28일 체결됐던 한일 위안부 합의의 주요 내용을 외교부가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하던 김앤장 법률사무소 측에 귀띔한 정황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검찰은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속행 공판에서 한상호 변호사의 자필 메모를 증거로 제시했다.

한 변호사는 강제징용 사건에서 일본 기업을 대리한 김앤장의 송무팀을 이끌었다.

그는 12월 28일자 메모에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에게 들은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을 적었다.

유 전 장관은 김앤장 고문이다.

메모에는 날짜와 유 전 장관의 이름 아래로 '12월 27일 윤 장관과 만찬. 이미 조율 종료. 다만 1.윤장관, 국내에 설명 곤란 2. 야치 국장, 아베에 보고 못 해'라는 내용이 적혔다.

유 전 장관이 전날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과 만찬을 하면서 '한일 위안부 합의의 조율이 끝났다'는 이야기와 관련 설명을 듣고 한 변호사에게 알려준 내용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그 아래로는 '어제 국장회의. 협의 성립. 오늘 장관 확인'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어서 '이슈'라는 소제목 아래 '1. 책임 인정. 법적 책임 / 사죄+정부 보상 2. 사죄. 동의 3. 보상. 한국 재단설립. 일본정부 예산으로 10억엔' 등의 항목이 적혔다.

또 '외교장관 회의 후 발표. 양 정상 전화회의. 정치적 결단. 소녀상 관련 단체 협의 해결 노력. 대외적 이미지. 미국의 협조. 대일 압력. 힐러리 당선 가능성 70%' 등의 설명도 뒤따라 기재돼 있다.

내용을 종합하면 일본 측의 책임 인정과 사죄, 재단 설립과 일본 정부의 10억엔 출연 등 이튿날 발표될 위안부 합의의 주요 내용을 윤 전 장관이 김앤장 측에 알려줬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불가역적 해결, 국제사회 비판 자제, 소녀상 철거' 등 민감한 내용까지 알려준 정황은 드러나 있지 않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등 대법원 수뇌부가 사법부의 이익을 위해 강제징용 소송의 상고심 결론을 뒤집거나 심리를 늦추려 했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김앤장 한상호 변호사를 여러 차례 집무실 등으로 불러 소송 상황 등을 알려주고 향후 진행을 논의했다고 의심한다.

한일 위안부 협상은 이렇게 강제징용 소송 심리가 미뤄지던 중에 타결됐다.

검찰은 타결 이후인 2016년 4∼5월께 양 전 대법원장이 청와대로부터 '6∼7월이면 일본이 약속대로 돈을 보낼 예정'이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달받은 뒤 본격적으로 전범기업 상고심에 정부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에 착수했다는 내용을 공소장에 적시했다.

이날 검찰이 공개한 한 변호사의 메모 내용에는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 이전인 2015년 11∼12월에도 정부 측에서 '위안부 문제의 진전'이나 '한일 관계' 등을 이유로 강제징용 소송 절차를 늦추려 한 정황이 담겼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한 변호사의 메모 내용은 들은 내용을 정리한 것인지, 아니면 한 변호사 개인의 생각이나 계획인지 불분명하다"며 한 변호사에게 직접 확인하지 않는 한 섣불리 해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메모의 일관된 형식을 보면 한 변호사가 들은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반박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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