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직후인 1949~1950년 발생한 '울산 보도연맹' 사건 유족들에게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 (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울산 보도연맹 사건의 희생자 유족 등 4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원고들은 당시 경찰관과 군인들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망인들을 살해했으며 국가는 유족인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에 관한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울산 보도연맹은 1949∼1950년 정부가 좌익 관련자를 전향시키고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당시 울산경찰서와 국군 정보국은 6·25 전쟁이 터진 직후인 1950년 8월 이들을 집단 처형했다.

2006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진행한 뒤 이듬해 말 울산 보도연맹 사건과 관련된 희생자 명단 400여명을 확정해 발표했는데 이 사건 원고들은 해당 희생자의 유족 등이다.

재판의 쟁점은 국가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준이었다. 1·2심은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시효로 인해 사라졌다고 판단하고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국가배상법 제 8조 등에 따르면 국가배상 청구권은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5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됨이 원칙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8년 8월 민법 제 166조 제1항 등에서 규정하고 있는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중대한 인권침해사건, 조작의혹사건' 등에 대해서는 해당 소멸시효가 적용돼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위 사건은 민간인이 집단으로 희생된 사건에서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입은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라며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등에 따른 장기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그럼에도 원심은 위헌결정에 따라 효력이 없게 된 규정을 적용해 소멸시효와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설명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