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인터뷰 - '여성 불모지' 공공부문 유리천장 깬 3인

강선영 육군 항공작전사령관 "단순히 女 비율만 늘렸다간 반발만"
김진숙 한국도로공사 사장 "출산·육아 제도적 장치 반드시 필요"
이미정 특허청 수석심판장 "주요 보직에 기회 평등 보장해야"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3월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2013년부터 8년 연속 최하위다. 그러나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부처 본부과장급(4급 이상) 중 여성 비율은 20.8%를 기록했다. 2017년(14.8%), 2018년(17.5%)보다 크게 늘어난 역대 최고 수준이다. 공공기관 임원의 여성 비중(21.1%)도 2년 새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2022년까지 중앙부처 과장급과 공공기관 임원 비중을 각각 2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2년 이상 앞당겨 달성한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창립 51년 만의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인 김진숙 한국도로공사 사장(59), 육군 항공병과 최초의 여성 장군인 강선영 육군 항공작전사령관(53), 특허청 특채 첫 고위공무원인 이미정 수석심판장(56) 등 공공부문에서 유리천장을 깬 대표적 인물을 한자리에 모아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을 들어봤다.

이들은 “여성 인력의 활동 반경은 과거에 비해 획기적으로 넓어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여성가족부를 양성평등부로 바꾸는 등 양성평등에 초점을 맞춰 관련 논의를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진숙 한국도로공사 사장(왼쪽부터)과 강선영 육군 항공작전사령관, 이미정 특허청 수석심판장이 최근 정부서울청사에 모여 유리천장 극복을 위한 과제 등을 논의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여성 비율 확대는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성별과 관계없이 균등한 기회를 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김진숙 한국도로공사 사장(왼쪽부터)과 강선영 육군 항공작전사령관, 이미정 특허청 수석심판장이 최근 정부서울청사에 모여 유리천장 극복을 위한 과제 등을 논의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여성 비율 확대는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성별과 관계없이 균등한 기회를 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여성 최초’라는 부담이 클 것 같습니다.

▷강 사령관=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는 뿌듯하면서도 안타깝습니다. 남성이 주로 수행하던 직무에서 성과를 발휘해 중요 보직을 맡은 여성에게 주로 쓰이잖아요. 그동안 이런 중요 보직을 여성이 맡은 적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항공병과장과 항공작전사령부 지휘관을 여성이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마침내 군에서도 여성이 인사 관리와 진급 기회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메시지라고 봅니다.

▷김 사장=부담과 책임감이 컸습니다. ‘여성인데 과연 잘할까’라는 우려가 덤으로 붙으니까요.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개인이 아니라 여성 인력의 실수로 비춰질까봐 겁도 났습니다. 제가 가는 길이 다른 여성 인력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뛰었습니다.

▷이 심판장=특허청 일반직공무원 1598명 중 412명(25.8%)은 여성입니다. 전문성을 갖춘 여성 인력이 있어도 국장 승진 사례는 최근 20년간 없었지요. 더 많은 여성 인력이 고위직에 올라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고민이 많습니다.

▶국방, 국토, 통상분야 모두 조직 내 여성 비율이 높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요.

▷김 사장=1988년 국토교통부의 전신인 건설교통부에서 첫 여성사무관으로 근무할 때만 해도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불편한 시선이 많았습니다. 출산휴가는 길어야 2개월이었고 육아휴직은 꿈도 못 꿨습니다. 건설감리 업무를 맡았을 땐 주변에서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은 업무’라고 만류했습니다. 새 업무를 맡을 때마다 “할 수 있으니 맡겨달라”고 설득해야 했습니다.

▷강 사령관=50만 명 이상의 육군 조직에서 여군 장교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1990년 처음 군에 임관했을 땐 지금보다 더 남성 위주의 조직 문화였습니다.

▷이 심판장=1997년 특허청 약무사무관 박사특채로 임용됐을 때만 해도 여성 심사관은 고위공무원까지 승진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공직에 발을 들인 계기는 무엇입니까.

▷김 사장=그나마 여성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분야가 공직이었습니다. 1983년 현대건설에서 처음으로 여성 대졸자 30명을 뽑은 적이 있습니다. 한 달 교육기간이 지나자 인사팀장이 ‘사규엔 없지만 결혼하면 그만둬야 한다’고 하더군요. 충격이었습니다. 공공부문은 안정적일 것이란 희망을 갖고 진로를 바꿨습니다.

▷이 심판장=서울대에서 약학과를 졸업하고 석사·박사 학위를 받으며 바이오·의학 분야 전문가의 길을 꿈꿨습니다. 첫 직장인 SK케미칼중앙연구소는 여성 인력이 성장하기 어려운 분위기였습니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려면 공공기관으로 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굴곡이 많았겠습니다.

▷김 사장=공공부문에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려움과 불이익을 겪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실력을 제대로 갖추고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강 사령관=매일 근육통에 바르는 멘소래담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해상 훈련으로 온몸이 시커멓게 그을리기도 했고요. 1년 내내 얼룩덜룩한 멍투성이로 대중목욕탕에 가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도 많았습니다. 여군을 ‘별종’으로 보는 내부 분위기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1988년까지는 여군이 결혼해도 출산은 안 된다는 규정까지 있었으니 말 다 했지요.
공공부문 유리천장 깬 3인 "여권신장이란 말 쓰지 말아야"

공공부문 유리천장 깬 3인 "여권신장이란 말 쓰지 말아야"

공공부문 유리천장 깬 3인 "여권신장이란 말 쓰지 말아야"

▶정부가 ‘공공부문의 여성 대표성 제고’를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 중입니다. 변화를 실감합니까.

▷강 사령관=여성 장군이 점차 늘어나 현재 5명이 근무 중입니다. 이전 정부에선 2명 이상의 여군 장성이 동시에 근무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 4월 말 여성 장교는 4000명이 넘어 육군 장교 전체의 8.5%를 차지합니다. 1990년 여성 장교가 간호를 제외하고 99명이었던 데 비하면 굉장한 변화입니다.

▷이 심판장=여성도 역량을 갖추고 있다면 고위직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특허청에서도 여성 과장이 주무과장이나 주요 정책부서 과장으로 발령받는 사례가 하나둘 나오고 있습니다.

▶요즘 여성 인력의 근무환경은 어떻습니까.

▷김 사장=유연근무제가 확대되고 자녀 돌봄휴가,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생겨나는 등 많이 개선됐습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진 것은 이런 제도적인 변화가 뒷받침된 게 결정적이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출산, 육아 등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여성 인력의 발목을 잡습니다. 충분한 보육시설을 확보하고, 휴직 후 적응을 배려하는 조직 문화가 조성돼야 합니다.

▶여성 인력의 장점은 뭐라고 봅니까.

▷강 사령관=요리사가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레시피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리더십도 여성, 남성을 구분하는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여성 리더십, 여권 신장이라는 말도 없어져야 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국정과제로 내세우는 ‘공공부문 여성대표성 제고’도 ‘공공부문 양성평등 강화’로 명칭부터 바꿔야 합니다. 이분법적 사고로는 여성이 남성과 공존하고 그들의 리더가 되기 어렵습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거치면서 경제활동 인구가 많이 줄었습니다. 여성 인력의 활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봅니다.

▷김 사장=공감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여성은 공감 능력이 높고 배려심과 소통 능력이 뛰어납니다. 최근 여성 리더가 조명을 받는 이유입니다. ‘큰누나’나 ‘큰언니’처럼 동료를 배려하고 조언하는 데 ‘보이지 않는 힘’이 클 겁니다.

▷이 심판장=갈등 조정과 섬세한 인력관리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봅니다. 이 능력이 발휘되면 조직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습니다.

▶여성 인력에게 특혜를 주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많은데요.

▷강 사령관=여성 인력이 고위직에 오를 때면 “능력은 비슷한데 여성이어서 특혜를 받는 것 아니냐”고 흘겨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여성이어서 등용되는 일은 있어선 안 됩니다. 각 조직에서 단순히 여성 비율만 늘리려고 하다가는 차별과 불균형이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양성평등의 핵심은 성별에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업무 기회를 열어주는 겁니다.

▷이 심판장=공감합니다. 여성 비율을 늘리려고 ‘능력이 없는 여성’을 등용했다가는 부작용만 커질 겁니다. 여성이 남성 위주 조직에서 리더로 활약하는 데 대한 거부감을 줄이려면 여성 인력이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현재 여성들이 느끼는 근무환경의 한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김 사장=여성 리더 후보군의 층이 두텁지 않습니다. 고위직 여성이 획기적으로 늘기 어려운 것은 리더 후보군이 적기 때문입니다. 입사는 물론 주요 보직에 대한 기회가 균등해야 합니다. 여성이란 이유로 주요 보직에서 제외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봤고, 실제로 제게도 일어나더군요.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 리더 후보군으로 성장하는 여성 인력이 많아져야 합니다.

▷이 심판장=유능한 인력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여성 인력을 주요 보직에 많이 임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기획재정, 인사 등 전통적으로 남성이 하던 보직을 여성에게도 맡겨봐야 합니다. 기회를 줘보고 능력을 발휘하면 리더 후보군으로 삼는 식의 체계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앞으로 조직에서 하고 싶은 역할은 무엇입니까.

▷강 사령관=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살려 4차 산업혁명의 첨단 영역에서 육군항공의 비전을 설계하려 합니다. 또 성차별 없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설 생각입니다.

▷김 사장=더욱 신뢰받는 공기업이 되도록 혁신을 시도할 겁니다. 여성을 비롯해 조직 내 모든 구성원이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분위기도 조성하고요.

▷이 심판장= 국내외 기업 간 특허분쟁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데 힘쓸 겁니다. 특허청 내 여성 과장을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여성 과장들이 두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정보 교환을 하는 모임을 만들려고 합니다.

▶여성 리더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이 심판장=조직의 리더가 되려면 자기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공 기술분야 지식은 물론 외국어, 관련 지식과 경험을 쌓으면서 경쟁력을 갖춰나가야 합니다.

▷김 사장=일과 가정의 양립에서 여성에겐 어려운 부분이 많을 겁니다. 저 역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습니다. 여성이 능력을 펼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겁니다. 좌절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길 바랍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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