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최근 서울역 폭행사건 등…"가해자 중심 접근방식" 비판
'묻지마' 딱지에 묻히는 사건의 본질…"피해자에 주목해야"

2020년 5월 26일 서울역 1층에서 한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4년 전인 2016년 5월 17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부근 한 노래방 건물 화장실에서 한 여성은 모르는 남성에게 흉기로 살해당했다.

서울역 폭행 피해 여성의 가족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쓴 글에서 "(피해자가) 건장한 남자였거나, 남성과 같이 있었다면 이런 사고를 당했겠느냐"고 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여성들은 "우리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두 사건에는 모두 '묻지마 범죄'라는 딱지가 붙었다.

'묻지마 범죄'는 통상 가해자가 뚜렷한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 등을 상대로 저지르는 범죄를 일컫는다.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를 모두 여성혐오 범죄로 보기는 어렵지만, 유사성을 보이는 사건들을 깊은 고민 없이 '묻지마 범죄'로 뭉뚱그리는 것은 사건에 가해자 중심으로 접근하면서 피해자와 사건의 사회 구조적 맥락을 지우는 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묻지마' 딱지에 묻히는 사건의 본질…"피해자에 주목해야"

◇ 가해자에 집중하는 '묻지마 범죄' 정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4년 발간한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는 학계가 아닌 언론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로 파악된다.

해당 보고서는 '묻지마 범죄' 사건을 가해자의 특성에 따라 불만 및 분노형과 정신 장애형으로 분류했다.

'묻지마 범죄'를 명확한 범행 동기 없이 불특정인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로 간주하고, 그 특징을 이해하려면 가해자의 특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이같이 분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접근법은 여성이기 때문에 일면식도 없는 가해자의 우발적인 범행의 대상이 된 사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는다.

서울대 여성학협동학 박사과정 김민정씨는 2017년 쓴 연구논문 '묻지마 범죄가 묻지 않은 것'에서 "경제적 취약계층과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를 범죄학계와 형사사법기관이 과잉 일반화해 '묻지마 범죄'로 일축했고 그 결과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된 여성들의 이야기가 삭제됐다"고 주장했다.

여성혐오에서 기인한 범행 동기나 맥락이 있는 경우에도 가해자가 정신질환자인 경우 개인의 병리적 문제로 범죄를 규정해 손쉽게 '묻지마 범죄'로 부르는 양상이 나타난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김씨는 "범죄의 원인을 개인화, 탈맥락화하면 해법은 결국 '괴물화'된 가해자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고 짚었다.

'묻지마' 딱지에 묻히는 사건의 본질…"피해자에 주목해야"

◇ 가해자 아닌 피해자와 사회적 맥락 봐야 제대로 된 대응책 나와
전문가들은 가해자 중심 접근법에서 벗어나 피해자와 사회구조적 맥락을 봐야 비로소 제대로 된 대응책으로 이어져 범죄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7일 "최근 서울역 폭행사건만 해도 일면식 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행인데도 '묻지마 폭행'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문제의식을 흐리게 할 수 있다"며 "'서울역 여성 폭행사건'이라 불러야 더 정확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사망한 조지 플루이드 사건에서도 흑인 대상 폭력이고 인종차별 폭력이라는 점에 동의해야 그에 따른 사회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것처럼 여성을 상대로 일어난 범죄도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점을 이야기해야만 적절한 대응책이 마련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의 나눔 팀장도 "서울역 폭행사건 가해자는 '순간적으로 욱해서 그랬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는데 이는 여성을 상대로 폭력을 저지르는 가해자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이유"라고 일축했다.

그는 "여성은 마땅히 남성에게 순응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남성이 이에 벗어나는 여성을 봤을 때 발생하는 분노에 기반해 여성 상대 폭력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성별에 기반한 폭력이라는 사건 본질을 보지 않을 때 제도적 대응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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