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강간 혐의 부인하고 허위 진술…타인 아픔에 공감 못해"
"영재교육으로 사회화 과정 못거쳐…수감생활 동안 추구 가치 생각해봐야"
1심서 징역 2년·집행유예 3년→항소심선 징역 2년 '법정구속'
'여친 구타·성폭행' 전 의대생의 추락…배경엔 '그릇된 성인식'
"긴 수감생활 동안 반성하고 앞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 김성주 부장판사가 판결을 마치고 '성폭행 의대생'에게 남긴 말이다.

1심 재판부는 여자친구를 성폭행하고 음주운전까지 한 혐의(강간 등)로 기소된 전북대학교 전 의대생 A(24)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을 맡은 김 부장판사의 판단은 달랐다.

원심을 뒤집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뒤 '도주의 우려'를 이유로 A씨를 법정구속했다.

A씨에 대한 판결이 이처럼 집행유예에서 실형으로 바뀐데는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

김 부장판사는 A씨와 부모가 제출한 반성문, 탄원서 내용을 토대로 A씨의 성장배경부터 짚었다.

그는 "내용을 보면 피고인은 어린 시절부터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남들보다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어 초등학교 입학부터 점진적인 공교육을 받기 어려운 조건이었다"며 "학교에서는 그저 시간만 보내다가 전북대 영재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아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로 인해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고 공감 능력도 떨어져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성향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피고인의 이런 성향이 이번 사건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는 추정이다.

A씨의 아버지는 전주 시내 한 병원의 의사이고 조부는 사학재단 이사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판사는 "평소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여성을 자신의 성적 도구로 여기는 등 피고인의 성 의식이 상당히 의심스러워 보인다"며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목 졸림과 폭행으로 항거가 어려운 상태에 놓였다"고 부연했다.

이어 "그런데도 피고인은 피해자가 성관계 거부 의사를 보이지 않아 이를 동의의 표현으로 이해했다고 주장한다"며 "피해자 고소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기 전 문자메시지 일부를 삭제하고 유리한 내용만 남기는가 하면 허위 진술로 사건 당시의 상황을 교묘하게 왜곡했다"고 강조했다.

A씨의 그릇된 성인식의 증거는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수사보고서에서 찾았다.

소개팅 앱을 통해 미성년자를 포함한 다수의 여성과 조건만남을 했거나 시도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었다.

불기소 처분을 받아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지만 A씨는 2010년과 2015년에도 강간 등 혐의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았다.

김 부장판사는 "유죄를 받은 사건은 아니지만 이런 정황이 피고인 휴대전화에서 추출된 것은 분명하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부모 소유의 고가의 외제 차로 음주운전을 해 상대 차량 운전자와 동승자에게 상해를 가한 범죄도 사회적 분위기상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치료해야 할 예비 의료인으로서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덧붙였다.

'여친 구타·성폭행' 전 의대생의 추락…배경엔 '그릇된 성인식'
A씨는 전북대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2018년 9월 3일 오전 전주시 한 원룸에서 여자친구 B씨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성폭행한 데 이어 이듬해 5월 술에 취해 차를 몰다가 신호대기 중이던 차를 들이받아 상대 운전자와 동승자에게 상처를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와 합의했고 성폭력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원심이 뒤집혀 A씨에게 실형이 선고되자 시민·사회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뒤늦게나마 사법 정의가 실현됐다"며 재판부의 판결을 반겼다.

전북대는 의과대학 교수회의와 총장 승인을 거쳐 A씨에게 출교를 의미하는 제적 처분을 내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