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발부시 수사심의위 사실상 무력화…기각시 '무리한 수사' 주장 설득력
이재용 측 수사심의위 신청에 검찰 구속영장으로 응수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 측이 '삼성 합병·승계 의혹' 사건에 대한 공소제기의 타당성을 판단해달라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하자 검찰이 이틀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나섰다.

이 부회장 측이 기소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을 검찰보다 외부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게 유리하다고 보고 승부수를 띄우자,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라는 초강수로 응수한 것이다.

양측의 수읽기와 기싸움이 치열해지면서 상황은 급박해졌다.

구속영장이 발부될 경우 이 부회장 측의 수사심의위 카드가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지만, 반대로 기각된다면 '무리한 수사'라고 삼성 측 주장에 설득력이 더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 주변에선 검찰이 법원을 설득할 결정적인 증거를 얼마나 확보했느냐가 관건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부회장과 김종중(64) 옛 미래전략실 전 전략팀장(사장) 측은 지난 2일 오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에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서를 냈다.

그러자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4일 오전 이 부회장과 최지성(69) 옛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 전 사장 등 3명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삼성 측은 1년 7개월에 걸친 검찰의 수사가 과도했음을 문제 삼으며 이 부회장을 재판에 넘기는 것이 옳은지를 외부 전문가들이 판단해 달라고 했지만, 검찰은 이를 일종으로 '여론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재용 측 수사심의위 신청에 검찰 구속영장으로 응수

◇ 1년 7개월 수사한 검찰, 혐의입증 자신하는 듯
검찰은 지난해 5월과 7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김태한(63) 삼성바이오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된 이후 좀처럼 구속수사에 나서지 못했다.

당시 법원은 "주요 범죄 성립 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수사 '본류'인 분식회계 혐의 자체에 의문을 던졌다.

검찰은 이후 보강 수사를 거쳐 객관적인 증거 확보를 위해 노력해왔고, 이날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때문에 검찰이 이 부회장 등 윗선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다수 확보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구속영장 기각 시 떠안을 후폭풍을 감수하고도 청구를 한 것은 그만큼 수사에 자신감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변경에 이르는 과정이 모두 이 부회장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진행됐으며 이 과정에 분식회계와 주가조작 등 불법 행위가 동원됐다고 본다.

검찰은 삼성 측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가를 동시에 띄우기 위해 계획한 시세조종 관련 문건, 제일모직 손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했다는 정황 등이 담긴 각종 증거를 법원에 제출했다.

수사팀은 이 부회장을 비롯한 피의자 3명 각각에 대해 범죄 혐의를 적은 150쪽 안팎의 구속영장 청구서를 제출하면서 구속이 필요한 사유를 설명한 수백 쪽 분량의 의견서를 첨부했다.

법원에 함께 제출한 수사기록은 400권 20만쪽 분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사건 수사와 공소제기의 정당성에 대한 평가를 검찰 외부전문가들에 맡기기에 앞서 법원으로부터 법리적 해석을 바탕으로 구속 필요성을 먼저 판단받아보겠다는 심산인 것으로 풀이된다.

영장전담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심의위가 아직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사실이 법원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영장 발부 여부는 얼마나 범죄가 소명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재용 측 수사심의위 신청에 검찰 구속영장으로 응수

◇ 이재용, 3년5개월 만에 다시 구속 갈림길…이르면 8일 영장실질심사
삼성은 지난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7시간 이상 진행된 이 부회장의 검찰 소환조사 내용으로 판단해 볼 때 구속기소든 불구속기소든 기소를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수사심의위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심의위 소집 여부를 판단하는 사전 절차인 검찰시민위원회도 소집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속영장 청구에 절차상 문제는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규정에도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수사심의위나 시민위의 진행 절차를 중단하게 한다는 내용은 없다.

삼성 측이 이례적으로 수사 막판에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한 것이 향후 수사 지연책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도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로 방침을 굳히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전격적인 구속영장 청구에는 삼성 측의 전략에 밀리면 그간 공을 들인 수사가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도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검찰은 이달 중 모든 수사를 마무리하기로 방침을 정한 바 있다.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및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 수사, 검찰 인사와 조직 개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수사가 거듭 지연된 상황에서 더는 일정을 늦출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2017년 1월 국정농단 사건 수사 때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후 약 3년 5개월 만에 다시 구속 갈림길에 서게 됐다.

당시 법원이 한 차례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해 구속 위기를 벗어났지만, 특검은 한 달간의 보강 수사를 거쳐 같은 해 2월 이 부회장을 결국 구속했다.

법원은 이르면 8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고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구속영장이 발부된다면 수사심의위 소집 요청이 의미를 잃을 수 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소식이 알려진 직후 성명을 통해 "수사심의위원회에서 객관적 판단을 받아 보고자 하는 정당한 권리를 무력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반대로 구속영장이 기각된다면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펼쳤다는 삼성 측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수사심의위의 기소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연합뉴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