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창록 법무법인 율촌 명예회장(사진)이 지난 28일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서울대 법과대학동창회 2020년도 정기총회에서 제38대 동창회장에 선출됐다. 임기는 2년.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대한민국 교육봉사단 이사장, (재)굿소사이어티 이사장, 대한중재인협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 스마트워크센터에서 제285차 정기이사회를 열고 제11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으로 김흥종 KIEP 선임연구위원(사진)을 선임·임명했다. 김 신임 원장은 유럽연합(EU)·유럽 지역과 자유무역협정(FTA)·국제통상 분야 경제 전문가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431년 5월 30일, 프랑스 루앙의 마르셰 광장에서 한 여인이 높다란 장대에 묶였다. 프랑스엔 구국(救國)의 영웅이지만 영국엔 마녀(魔女), 잔 다르크가 군중 앞에서 화형에 처해지는 순간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19세. 프랑스 땅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백년전쟁(1337~1453)을 벌이던 중이었다.잔 다르크는 1412년 프랑스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13세이던 1425년 어느 날 그는 대천사 성 미카엘과 성녀 마르가리타, 성녀 카테리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프랑스를 구하라”고 말이다. 음성을 마음에 새긴 잔 다르크는 1429년 프랑스 시농에 있는 샤를 황태자를 찾아갔다. 잔 다르크는 황태자를 만난 자리에서 영국의 포위망에 고립된 오를레앙 지역을 구해내겠다고 다짐한 뒤 전장으로 향했다.잔 다르크가 이끄는 군대는 오를레앙에서 영국군을 격퇴했다. 연이어 승전보를 올린 잔 다르크는 전통적으로 프랑스 왕국의 대관식(戴冠式)이 이뤄지는 랭스까지 되찾았다. 잔 다르크 덕분에 황태자는 1429년 7월 대관식을 거행해 샤를 7세에 올랐다.승승장구하던 잔 다르크는 1430년 5월 콩피에뉴 전투에서 영국과 손잡은 프랑스 부르고뉴파에 붙잡혔다. 영국군에 넘겨진 그는 종교재판에 회부돼 마녀로 낙인찍혀 화형을 당했다.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당선 비결이요? 코스타리카에서도 한국인의 성실하고 정직한 모습을 잃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죠.”한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코스타리카 케포스시장에 당선돼 지난 1일 취임한 김종관 씨(70·사진)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어떻게 지역 주민의 신뢰를 얻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케포스는 중미 코스타리카 서쪽 해안에 있는 인구 약 3만3000명 규모의 도시로, 미주 지역의 대표적인 휴양지다. 김 시장은 “37년 동안 열심히 살면서 신뢰를 많이 쌓은 것 같다”며 “피부색이 다른 나를 믿고 뽑아준 주민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1950년 경기 화성에서 태어난 김 시장은 부친이 세상을 떠난 직후인 1983년 코스타리카로 이주했다. 김 시장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철물점을 정리하고 있는데, 다른 나라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먼저 미국에 가서 살다가 여행 차원에서 방문한 코스타리카의 자연환경에 매료돼 이곳(케포스)에 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33세 나이에 지구 반대편으로 건너간 그는 케포스 현지에서 철물점을 차렸다. 김 시장은 “아버지의 노하우를 토대로 열심히 일하던 와중에 코스타리카에 건축 붐이 일었다”며 “이때 건축 원자재를 팔아 기반을 잡았다”고 했다. 그는 지금 케포스에서 4성급 호텔과 유원지를 소유하고 있다.김 시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불과 49표 차이로 당선됐다. 상대방은 선거 당시 현직 시장으로, 개표 결과에 불복해 현지 선거관리 기관인 최고선거재판소에 재개표를 요구하기도 했다. 요구가 받아들여져 다시 검표 과정을 거쳤지만 결과는 그대로 김 시장의 승리였다.정치 경험이 전무한 한국인 사업가와 현직 시장의 대결은 코스타리카 현지에서도 이슈였다. 김 시장은 “사전 여론조사에서 내가 앞서자 상대 측 후보는 ‘공짜로 집을 주겠다’는 식으로 표를 돈으로 사려고 했다”고 설명했다.포퓰리즘 공약이 쏟아지는 가운데 김 시장은 제1공약으로 지역 대학생을 위한 교통편 마련을 내세웠다. 그는 “케포스는 관광지라 도시에 대학을 유치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다른 이웃 도시로 통학할 수 있는 교통을 제공함으로써 지역 주민의 교육 수준을 높이는 것이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손에 쥐여주는 돈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고민과 진심을 주민들이 알아준 덕분”이라고 했다.현재 코스타리카 국적인 김 시장은 “외국에 살면서 (한국에 대한) 애국심이 더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인으로서의 강력한 정신과 정체성이 나를 여기에 이르도록 뒷받침했다”는 것이다. 그가 케포스 현지의 호텔(산바다호텔)과 유원지(물구리) 이름을 한국 발음으로 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시장은 “케포스에서 조그마한 한국의 역사를 계속 써가고 싶다”고 했다.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