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광복회와 독립기념관 공동으로 임병극(1885~미상)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1885년 평안도에서 출생한 선생은 1917년 고향을 떠나 북간도로 망명해 대한국민회 일원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대한국민회가 만든 항일무장활동 기관인 국민회군의 제2중대장에 임명되어 독립전쟁의 최일선에서 활약했다.

국민회군과 함께 북간도에 근거지를 구축하고 항일무장 활동을 펼치던 독립군단들은 효과적인 항일전투를 위해 1920년 5월 22일 북간도 독립군 연합체인 대한북로독군부를 결성했다.

북간도의 여러 독립군단 소속 독립군 유격대는 수시로 국내 진입전투를 벌여 일제 침략자들을 응징했다.

'6월 독립운동가' 청산리전투 참여 임병극 선생

1920년 6월 4일 독립군 유격대는 국내로 진입해 일본군 헌병 순찰대를 격파하는 전공을 세운 후 이틀 뒤 대한북로독군부 주력 부대가 주둔해 있던 봉오동으로 향했다.

1920년 6월 7일 홍범도 장군의 공격 신호탄에 따라 일제히 일본군을 공격했고, 대한북로독군부 피복과장이면서 국민회군의 2중대장이던 임병극 선생도 부하들을 독려해 적극적인 공격을 해 봉오동 전투 승리에 기여했다.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에도 참여해 전승을 거뒀고, 1921년 안도현에서 의용대를 조직해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제의 기관을 기습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1923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에 연해주 민족운동계와 고려혁명군 대표자격으로 참가했다.

북간도에서 의열투쟁을 전개하고자 1924년 2월 8일부터 사흘간 북로군정서 인사들과 회합했다.

이후 선생에 대한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자 중국 연길을 왕래하며 지하활동을 이어갔다.

1924년 9월 부하 5명과 함께 체포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6월 독립운동가' 청산리전투 참여 임병극 선생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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