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 센터에 2년간 후원해 오던 이모씨(25·서울 마포구)는 최근 기부금 이체를 중단했다. 정의기억연대 사태를 보면서 후원 단체의 회계 투명성을 믿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내 돈이 엉뚱한 곳에 쓰이지 않도록 피해자에게 직접 지원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의 ‘선의’만 믿고 있을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민단체도 외부 기관의 회계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에 국민 절반이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최근 전국 18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3.2%가 시민단체의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외부 회계 기관의 감사를 받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21.4%는 ‘정부가 시민단체를 직접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기부 문화는 위축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기부 경험이 있는 사람’의 비율은 2013년 34.6%(1만7664가구 대상)에서 지난해 25.6%(1만8576가구 대상)로 감소했다. ‘모금 단체에 대한 신뢰’ 문제로 지난 1년간 기부하지 않았다는 응답자 비율은 최근 크게 증가했다. 2017년 조사에서는 기부 경험이 없는 사람 중 8.9%가 모금 단체에 대한 신뢰 문제를 이유로 꼽았으나 지난해 이 비율은 14.9%로 3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통계청이 전국단위에서 추출한 표본가구에서 13세 이상 구성원 3만8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전문가들은 “기부금이 감소하는 걸 막기 위해 공익법인이 스스로 회계 투명성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명확한 기부금 사용처 내역 등 회계 투명성은 모든 공익단체의 기본”이라며 “당장의 활동이 급했던 과거에는 투명성이 크게 강조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사회가 성숙한 만큼 공익법인과 비영리 시민단체들이 더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운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운호 경희대 시민사회NGO학과 교수는 “공익법인은 기부자와 후원자의 신뢰를 토대로 성장하면서 시민사회를 이롭게 하는 단체”라며 “단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투명한 회계 운영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