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웃던 할머니·우리집 반항아·감자요리 달인…사라진 인생 진혼
NYT "2020년 미국에 어찌 이런 일이…숫자는 일부만 보여줄 뿐"
WP "어떤 전염병도 이처럼 빠르고 무자비하게 목숨 앗아가지 않아"
"헤아릴수 없는 죽음" NYT·WP 1면에 코로나 사망자 10만명 애도
"헤아릴 수 없는 죽음", "죽은 이들의 얼굴들".
미국 양대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가 나란히 27일자 1면에 내건 기사의 제목이다.

참혹한 전쟁이나 사고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애도하는 듯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희생자를 위한 부고 지면이다.

코로나19가 세계 최강국 미국에서 1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난 2월 29일 첫 사망자가 보고된 후 채 석 달도 되지 않아 벌어진 참사다.

미국의 실패한 전쟁인 베트남전쟁 때 미군 사망자 5만8천220명을 넘어선 게 지난달 28일이다.

베트남전은 10년을 끌었다.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이날 현재 미국 코로나19 사망자수는 10만2천53명이다.

누적 확진자수는 174만4천793명. 압도적인 세계 1위다.

NYT는 지난 24일에 이어 두 번째로 1면을 할애해 코로나19 사망자들의 이름과 짤막한 부고를 실었다.

"늘 웃어주셨던 우리 증조할머니 매리언 크루거(85, 워싱턴)", "우리집의 반항아 제임스 퀴글리(77, 시카고)", "언제나 달변이셨던 크리스틴 맥로린(86, 시카고)"….
"사랑이 넘치고 관대했으며 모험심이 가득했던" 할아버지와 "누구도 그녀처럼 크림 감자와 튀긴 옥수수 요리를 하지 못했다"는 할머니도 있었다.

NYT는 "하루 평균 1천100명이 코로나19에 희생됐다는 것"이라며 "여기 이 사람들은 지금까지 희생된 10만명의 삶들을 대표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각지의 부고에 실린 추억들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돌아본다"며 "숫자는 일부만 보여준다.

이들이 어떻게 아침을 맞이하고 밤에 잠이 들었는지는 결코 전달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헤아릴수 없는 죽음" NYT·WP 1면에 코로나 사망자 10만명 애도
백수를 누린 이들도 코로나19 앞에서 멈춰야했다.

"친구들과 가족에게 '캡틴'이라 불렸던 조지 포렛스트 주니어(99, 뉴저지)", "오랜기간 치과의사였던 콘래드 던커(99, 시카고)" 등의 이름도 보였다.

50대 이상이 주를 이뤘지만 "늘 다른 이들을 보살피느라 바빴던" 32세의 티모시 브랜드콤(시카고)도 떠나갔다.

NYT는 "이 전염성 높은 바이러스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지 못하게 했다"며 "우리는 그들을 마지막으로 안아주지도, 그들과 이별의 술잔을 나누지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도 못했다.

참혹한 전쟁이나 테러, 허리케인이 할퀴고 지나갔을 때도 했던 애도 의식을 우리는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곁을 지키는 가족 하나 없이 미어터지는 병원에서 홀로 '엄마, 사랑해'를 마지막으로 되뇌며 눈을 감았을 것이고 누군가는 봉쇄된 요양원에서 숨을 거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WP는 일부 희생자들의 사진과 함께 좀더 상세한 부고를 실었다.

20대부터 100세, 105세까지 다양한 이들의 삶이 지면으로 옮겨졌다.

그중에는 28세의 나바호 인디언 여성 밸렌티나 블랙호스도 있다.

"언젠가는 부족을 이끌 꿈을 꿨던" 그녀를 가족들은 "혈기가 넘쳤고 나바호 인디언의 전통 계승에 열심이었다"고 회고했다.

WP는 "미국에서 어떤 전염병도 코로나19처럼 빠르고 무자비하게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지 않았다"면서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상황에서 전염병이 모든 주에서 사람들을 희생시켰고, 격리 조치로 죽은 이들을 애도하는 의식은 사라졌다"고 전했다.

NYT는 "2020년에 왜 이런 일이 미국에서 일어난 것인가? 왜 이 바이러스가 특히 흑인과 라틴계 희생자들을 양산한 것인가? 왜 요양원은 그처럼 초토화 됐나?"라며 "이러한 질문들은 앞으로 수십년간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정초만 해도 새해를 축하했을 10만명이 미국 지도 위에서 사라졌다"면서 마지막으로 영국 계관시인 알프레드 로드 테니슨의 시구를 인용했다.

"숫자는 사람의 상황에 적용할 때는 불완전한 수단이다"(A number is an imperfect measure when applied to the human conditio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