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예맨 4광구 운영권 컨소시엄 구성
석유공사의 배상책임 인정한 하급심 뒤집어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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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유전사업 실패’ 이후 함께 컨소시엄을 꾸렸던 회사들로부터 수백억원대 민사소송을 당한 한국석유공사(석유공사)가 보상금 지급 책임을 덜게 됐다. 대법원이 최근 석유공사가 이들 회사에 240억원 가량의 보상금을 물어내야 한다는 하급심 판결을 뒤집어서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한화가 석유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보상금 반환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같은날 대법원 제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한국조선해양(당시 현대중공업)이 석유공사를 상대로 부당이득을 반환해 달라고 낸 소송에선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건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해 7월 석유공사는 예멘 4광구 운영권의 50%를 따냈다. 50%의 지분 가운데 15%는 현대중공업에, 5%는 한화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석유공사는 지분매입대금의 105% 수준에 해당하는 별도의 ‘보상금’도 받았다. 보상금이란 유전 사업 투자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데 대한 일종의 프리미엄이다.

하지만 예멘 유전사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2008년 해당 광구에 대한 평가 작업을 새로 했는데, 4광구의 경제성이 예상보다 훨씬 낮다는 결론이 나왔다. 개발비용이 급격히 상승했고 유가가 급락하는 등 다른 여러 변수들도 생겼다. 결국 석유공사는 2013년 현대중공업 및 한화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유전사업에서 철수했다.

그러자 한화와 현대중공업은 “석유공사가 최저생산량을 보장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만큼의 생산을 하지 못해 손해가 발생했다”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분매입비와 보상금 모두를 돌려달라고 했고, 한화는 보상금만이라도 반환해 달라고 했다.

1심은 모두 석유공사가 두 회사에게 돈을 물어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실제로는 없는 사실(광구의 경제성)을 있는 사실로 잘못 인식한 착오’로 한화와 현대중공업이 사업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두 회사가 이 같은 착오를 한 이유가 피고에 있다고 지적했다. 즉 석유공사가 현대중공업과 한화를 기망했다는 취지다. 현대중공업과 한화는 각각 179억원과 59억원의 보상금을 돌려받으라는 1심 판결문을 받아냈다.

하지만 2심부터는 판결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한화 사건에서는 2심에서도 59억원 보상금 지급 판결이 유지됐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사건에선 2심 재판부가 지분매입비와 보상금 모두 반환할 필요가 없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석유개발사업은 전형적인 고위험·고수익 사업인 점 △개발 초기부터 매장량과 경제성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 등에 주목했다.

석유공사의 손을 들어준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됐다. 대법원은 한화가 승소한 항소심 사건도 상고심에서 뒤집어, 석유공사는 한화한테도 보상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게 됐다. 대법원은 “장래에 발생할 막연한 사정을 예측하거나 기대하고 법률행위를 한 경우 그런 예측이나 기대와 다른 사정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한 위험은 원칙적으로 법률행위를 한 사람이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현대중공업 사건에서 석유공사를 대리해 승소를 이끌어낸 법무법인 바른의 김도형 변호사는 “하급심 판결이 선례로 남았다면 자원개발사업에 투자하고자 하는 사업체는 무조건 높은 금액을 제시해 낙찰받은 후, 사업이 실패하면 매도자를 상대로 취소권을 행사해 개발 리스크를 모두 매도자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있었다”며 이번 대법원 판결의 의의를 밝혔다.

한화 사건에서 석유공사를 대리한 법무법인 태평양의 강동욱 변호사도 “사업 리스크를 오로지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의 1심 판결이 굳어졌다면 대규모 투자사업 컨소시엄이 구성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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