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대 속성 달라…'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구조' 바꿔야"

탐사보도팀 = 취재 과정에서 만난 교사와 학생들이 한목소리로 지적한 학교의 문제는 '교사가 교사답게 그리고 학생은 학생답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수의 교사는 각종 '갑질'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쏟아지는 행정업무로 본연의 업무인 수업에 어려움을 겪는 지경이라고 말한다.

또 학생들은 상위권 대학 합격자 늘리기가 목표인 학교에서 낙오해 좌절하거나 학교 폭력의 피해 등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고민한다.

학교가 더는 자아성취와 성장의 장이 아닌 좌절과 절망의 공간이 됐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전문가들은 학교를 불편해하는 교사와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을 바로 잡으려면 우선 교육 서비스 제공자인 교사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 소위 공부 잘하는 소수의 학생을 위해 다수의 학생을 희생시키는 구조를 바꾸고, 학생 대부분이 각자의 관심 분야를 더 공부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 "요즘 세대 속성 달라…소수를 위해 다수 희생하는 구조 바꿔야"
청소년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거나 이탈하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이 내놓는 해법은 '학교의 변화'다.

우선 성적과 상위권 대학 합격자 늘리기를 중시하는 풍토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육부 교육통계서비스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등에 따르면 청소년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탈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학업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학교 밖 청소년들도 성적이 좋지 않아서 자괴감을 느끼거나, 학교에서 차별대우를 받기도 하고 학업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 자퇴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요즘 세대의 속성 자체가 과거와 다르고 가치도 다양해지고 있다.

예전처럼 입시나 명문대를 목표로 전체를 끌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닌데 학교에는 아직 '산업화 시대의 문법'이 남아있다"면서 "획일화한 잣대로 통제하려는 학교와 아이들의 문화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수능에 종속된 교육 과정에서 벗어나 수학이 안 되는 아이는 기초 수학 정도만 하도록 하고, 다른 관심 분야의 과목을 더 공부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교육 과정은 여전히 국어, 영어, 수학 중심으로 획일적"이라며 "명문대학에 가는 소수를 위해서 나머지 아이들이 희생하는 구조를 만들어서는 안 되며, 수능 확대만이 공정성을 보장한다고 인식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혼돈의 학교]⑥ "교사·학생 제역할 할 수 있는 환경 조성해야"
청소년들의 학교 부적응을 유발하는 또 다른 원인은 '대인관계'다.

다양한 이유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학교 폭력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되는 경우다.

청소년들은 이런 상황에 놓였을 때 학교의 도움을 원한다.

그러나 학교 폭력 피해를 겪고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 대부분은 학교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따라서 학생의 생활이나 고민 상담을 전담할 수 있는 전문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이 교사와 학생들의 공통적인 요청이다.

일각에서는 학교 폭력 문제가 교사의 생활지도 영역에 해당하는 만큼 교사의 분발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교사 입장에서 학교 폭력은 물리적·심리적으로 과중한 업무 때문에 고충을 겪는 지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업무 자체를 개별 학교가 아닌 교육청이나 지방자치단체가 맡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실천 교육 교사 모임의 천경호 전략기획실장은 "지방자치단체는 학교보다 훨씬 폭넓은 인력 풀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 강사를 구하기도 수월하고, 업무 인수인계의 문제에서도 효율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 강사 채용만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교사가 전문성을 기를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 성북구에 재직하는 중학교 교사 이모 씨는 "학교에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정서적 역할이 요구되고 있는 만큼 교사 상담 연수 지원 등이 필요하다.

또 학교 차원의 직업교육, 인성교육 등 학교 밖 청소년들을 흡수할 교과 외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교사 행정업무 줄이고 민원 창구 교장으로"
현재 대부분 교사는 교과목 수업과 담임 업무 외에도 방과 후 교실, 진로 체험, 학교 폭력 담당, 수학여행 지도 등 다양한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이런 행정 업무들은 대부분 계획 구상부터 실행과 마무리까지 담당 교사가 전담한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수십∼수백 쪽에 이르는 문서를 작성하고 교육행정 정보시스템(나이스)에 입력한다.

학교 폭력과 같이 민감한 사안의 경우 문서상 작은 실수 하나만 발생해도 법적 책임이나 소송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교사들이 가장 중요한 업무인 수업에 집중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혼돈의 학교]⑥ "교사·학생 제역할 할 수 있는 환경 조성해야"
교사들은 이런 행정업무 부담 해소를 교육 정상화의 최우선 과제로 꼽는다.

천경호 실천 교육 교사 모임 전략기획실장은 "각종 교육 관련 법령에 따라 학교 안에 만들어야 할 위원회가 36가지나 되고, 시·도교육청마다 트렌드에 맞춰 새로운 지침들이 내려온다.

이런 업무를 하다 보면 아이들을 관찰하기 어렵게 되고 관심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천 실장은 "교대에서는 학생을 가르치는 법을 배웠는데 학교에서는 업무가 더 중요한 상황이 계속된다.

이것이 교사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첫째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교사들은 학교 폭력 등 크고 작은 사건·사고와 학부모 민원을 혼자 감당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교사들은 대부분 학부모나 학생의 폭언·폭력 자체도 힘들지만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상사인 교장과 교감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힘들다고 증언하고 있다.

[혼돈의 학교]⑥ "교사·학생 제역할 할 수 있는 환경 조성해야"
이 밖에도 교육 현장에서는 교장이 학교 운영의 결정권을 독점하고, 교사 승진을 좌우하는 이른바 '제왕적 교장 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 시행 중인 개방형 교장 공모제를 확대해 정기적으로 교장의 업무 성과를 평가할 수 있도록 하자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교사들이 승진하지 않고도 보람과 자긍심을 느껴야 하는데, 지금은 권한 없이 생활하며 학급과 학교에서 문제가 터지면 상당히 시달리는 구조"라면서 "교사들이 학교 안에서 스스로 논의해서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책임지는 학교 자치 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교장 공모제는 구성원인 교사들이 교장을 검증하는 시스템이고, 이렇게 민주적으로 공동체가 선발하고 책임을 함께 하는 구조라면 교육의 질도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경원 참교육연구소장은 "교사의 본령은 수업과 상담이고 이를 돕는 것이 교육 당국의 역할"이라면서 "교사가 과중한 행정과 돌봄 업무로 수업과 학생 상담에 소홀하게 된다면 국가적 손해이고 낭비"라고 지적했다.

전 소장은 "향후 10년 이내 교사가 설 자리는 학생에게 배우는 방법을 안내하고 지도하며 학생의 내적 성장을 돕는 안내자이자 상담가의 모습"이라면서 "빠르게 변하는 교육환경과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도록 교원양성체제를 개편해야 하고, 교사가 '안내자이자 상담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상담역량도 길러줘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