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빗장을 걸어 잠근 베트남에 첫 수출 길을 뚫은 벤처기업이 있다. 설립 5년 된 보건의료 플랫폼 개발회사 카이아이컴퍼니다.

하마터면 코로나19로 회사의 명운이 달린 수출 기회를 놓칠 뻔 했지만, 범정부의 '베트남 입국 작전'이 가동되며 극적으로 살아났다. 정호정 카이아이컴퍼니 대표는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하는 기적이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에 막힌 수출

정 대표는 지난 2월 27일 베트남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해부터 경기도와 함께 진행해왔던 베트남 공공보건의료 전산화 기술 공급 프로젝트를 최종 시연하는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2015년 설립 후 국내에서만 영업해오던 카이아이컴퍼니에게 이번 프로젝트는 글로벌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정 대표는 베트남 땅을 제대로 밟아보지도 못하고 한국으로 되돌아와야했다. 한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베트남 정부가 급작스럽게 한국발 여객기의 공항 착륙을 불허하며 비행기가 긴급 회항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베트남 정부는 16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 무비자 입국을 불허하고 급기야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막는 초강경 대응에 나서며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

수출 계약을 코 앞에 두고도 베트남 입국을 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던 카이아이컴퍼니는 중소기업청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정 대표는 "설마 정부에서 벤처기업 수출 문제를 해결해 줄까 의문이 있었지만, 중기청 연락 이후 산업부에 이어 총리실에서도 차례로 전화가 오면서 의문이 희망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범정부 태스크포스 가동

3월 초 국무조정실을 필두로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외교부,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등이 참여하는 범정부 '기업인 해외 입국 애로 해소 태스크포스(TF)'가 꾸려졌다. TF를 중심으로 카이아이컴퍼니와 같이 수출 길이 막힌 중소·중견기업들을 위한 '베트남 입국 작전'이 시작됐다.

산업부는 중기부, 코트라와 함께 기업인들의 베트남 입국 수요 조사와 해외 현지 상황을 챙겼다. 산업부로부터 수요조사 자료를 받은 외교부는 베트남 정부와 협상하며 한국인 비자를 따냈다. 외교부로부터 입국 허가가 떨어진 기업인 명단을 받은 복지부는 전국 병원으로부터 협조를 구해 기업인들의 건강상태확인서를 발급했다. 국무조정실은 각 부처마다 맡아야할 업무를 조율했다.

TF에 속한 한 정부 관계자는 "각 부처별로 보고와 업무절차가 다르고 이해관계도 다르기 때문에 범부처 협업 사례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면서 "정부 내부에서조차 베트남 특별입국 프로젝트가 신속하게 진행된 것에 대해 놀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벤처 첫 수출 성사시킨 '베트남 입국작전'.."기적을 겪었다"
드디어 지난 달 29일 정 대표는 베트남 번동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전세기를 탈 수 있었다. 베트남 입국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회항한 지 두 달만이다. 전세기에는 143개 기업 관계자 340명이 올라탔다. 이들은 모두 정 대표와 같이 코로나19로 베트남 입국이 어려워 사업에 차질을 빚다가 범정부TF를 통해 특별 입국을 허가받은 기업인들이었다. 베트남이 코로나19사태 이후 특정 국가 국민들을 대규모로 입국시킨 것은 한국이 처음이었다.

베트남 입국 후 14일간 호텔 격리를 마친 정 대표는 하노이 국립 딴난종합병원과 하노이 산부인과에 공공 보건의료 전산화 기술 지원을 위한 최종 시연을 무사히 끝내고 최근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노이 보건국으로부터 오는 7월 카이아이컴퍼니의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확약을 가지고서다. 코로나19 증상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전산화 기술까지 덧붙여 납품하기로 했다.

정 대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베트남 입국이 성사되고 2주간의 격리를 견디어내는 과정마다 어려움을 해결해준 사람은 놀랍게도 대한민국 공무원들이었다"며 "편견을 가졌던 공무원들로부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공무원이 달라졌다"

이번 코로나19사태를 겪으며 "공무원들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등 과거 전염병 발병때보다 확실히 정부의 대처가 신속하고 과감해졌다는 분석이다. 외신들도 'K-방역'의 사례를 들며 한국 정부를 재평가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정부가 이 같이 신속하게 코로나19에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적극행정'이라는 제도가 큰 역할했다는 분석이다. 적극행정제도는 즉각적인 행정조치가 필요한 경우 법령과 관행에 머무르지 않고 '선조치 후보완' 하라는 지침이다. 지난해 2월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적극행정'을 주문한 뒤 그 해 8월 '적극행정 운영규정'이 제정됐다.

규정에 따르면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적극행정 지원위원회’의 의결을 받거나 감사기구의 ‘사전컨설팅’을 거치면 공무원에게 절차상 문제 등 책임을 묻지 않고 징계를 면제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지난 2월부터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적극행정 지원위원회’ 또는 ‘사전컨설팅’을 거쳐 시행된 적극행정 건수는 총 275건에 달한다.

이인호 인사혁신처 인사혁신국장은 "공무원들이 소위 '복지부동'하는 데는 규정과 관행을 지키지 않았을 때 따르는 감사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이라며 "적극행정에 대해 문책당하지 않는 제도적 보호장치가 생기며 공직문화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