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재난지원금을 대형마트와 온라인에선 대부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 불편을 느끼는 국민이 많다. 15일 서울 남대문시장의 한 상점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쓸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긴급재난지원금을 대형마트와 온라인에선 대부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 불편을 느끼는 국민이 많다. 15일 서울 남대문시장의 한 상점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쓸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코로나지원금) 지급이 지난 13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초유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각 가정의 소비 여력을 높인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하지만 수령 및 사용 방법을 놓고 논란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이 원하는 대형마트 등에서는 지원금을 쓸 수 없고, ‘관제 기부’와 ‘기부 피싱’ 등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코로나지원금을 둘러싼 각종 논란과 배경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대형마트에선 못 쓰고, 성형외과에선 쓴다?

무엇보다 사용처를 둘러싼 불합리와 모순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코로나지원금은 백화점·대형마트 등에서는 사용하지 못한다. 정부가 소상공인 지원 및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에 혜택을 줘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집착한 결과다. 여기엔 대형마트 의무휴업제 등 대기업의 유통업을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해 온 여당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하지만 이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사용처가 계속 발견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영세 소상공인 지원과 관계없는 미용 목적의 쌍꺼풀 수술이나 보톡스 시술, 골프용품 구입 등에 사용한 사례가 속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와 달리 대형마트엔 대기업도 있지만 다수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납품을 한다. 국내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는 안 되지만 이케아 등 일부 다국적 기업 매장에서는 결제가 되는 역차별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담배와 주류 등을 사재기하는 일도 잦다. 대형마트에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을 굳이 비싼 값에 사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많아서다. 일부 전통시장 점포가 코로나지원금으로 결제하는 사람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재난지원금의 역설…성형 되고 소상공인 납품하는 대형마트 안돼
“나도 모르게 기부했어요”

정부와 여당은 국민의 적극적인 기부 동참을 원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36.0%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지난해 38.1%로 올랐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세수가 줄고 정부 지출이 늘면서 이 비율이 45%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재정건전성 악화 논란이 달갑잖은 여당으로서는 큰 부담이다.

행정안전부가 각 카드사에 “코로나지원금 신청 화면과 기부 신청 절차를 한 화면에 넣으라”고 지침을 내렸던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게 관가 안팎의 분석이다. 자동응답시스템(ARS)으로 신청할 수 있도록 하자는 카드사들의 제안을 정부가 거절한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기부 피싱’ 논란을 빚으면서 오히려 상당수 국민에게 기부에 대한 거부감을 키우게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회사에서 코로나지원금 기부하라는데…”

기획재정부는 13일 “과장급 이상 간부들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이들의 코로나지원금을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자발적 의사라고는 했지만 과장들을 한자리에 모은 뒤 “기부하지 않을 사람이 혹시 있느냐”고 공개적으로 묻는 방식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른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도 앞다퉈 ‘눈치껏 기부’에 동참할 전망이다.

민간에서도 정부 정책 영향을 크게 받는 대기업과 금융회사부터 ‘기부 선언’에 나서기 시작했다. 아예 임직원이 받은 코로나지원금 전액을 기부하겠다는 기업도 나타났다. 하지만 이 중 상당수가 임직원의 동의를 받지 않고 발표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었다. 해당 기업은 뒤늦게 “받고 싶은 직원은 따로 의사를 표시하면 익명으로 기부 명단에서 빼 주겠다”고 했다. 경영계에는 “일부 기업은 오너가 연말에 성과급으로 보상해 주는 조건으로 청와대와 권력에 잘 보이기 위해 ‘전 직원 기부 쇼’를 했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지자체 ‘재정 살포’ 가속화 우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뒤 가장 처음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곳은 경기도다. 이재명 지사는 여기에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재난지원금을 향후 본격적인 기본소득 정책을 도입하는 교두보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여기에 다른 지자체들이 뛰어들면서 지자체별로 재정 살포 경쟁이 본격화됐다. 일부 지자체는 “향후 기본소득 지급을 검토하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문제는 전국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가 44.9%(2019년 기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지자체 재정이 악화하면 그 부담은 결국 전 국민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기재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지자체들의 재정 살포가 더 심해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저소득층 자활 의욕 떨어져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은 4일 현금으로 미리 지원금을 받았다. 유용하게 쓴 수급자도 많지만 이 중 상당수는 지원금을 술과 담배, 도박 등에 썼다는 게 5일 서울 한 쪽방촌을 찾은 자원봉사자들의 전언이다. 기존에 현금 복지를 받던 이들은 코로나19 사태 타격을 별로 받지 않았다. 이들은 “들어온 지원금을 딱히 쓸 데가 없으니 술을 마신다”고 했다. 이날 쪽방촌 옆의 영등포 전통시장 포장마차는 이른 아침부터 불콰하게 취한 사람들로 붐볐다.

반면 평소 복지 급여를 받지 않고 일을 해 온 쪽방촌 주민들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일거리가 떨어지면서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는 이가 속출했다. 쪽방촌 곳곳에서 폐지를 깔고 누워 잠을 청하는 사람이 많았다. 쪽방촌 무료 병원인 요셉의원에서 일하는 박상욱 팀장은 “기초생활수급 등 현금 복지를 받고 나서 자활 의지를 완전히 잃고 수급에만 의존하게 된 주민들을 많이 봐 왔다”며 “저소득층 지원은 이들이 다시 자기 발로 설 수 있게 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수단은 현금이 아니라 현물이나 바우처 등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