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투명성 논란에 휩싸인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서울 마포구 사무실 앞 모습. 사진=연합뉴스

회계 투명성 논란에 휩싸인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서울 마포구 사무실 앞 모습. 사진=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는 정의기역연대(이하 정의연)의 부실 회계 문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지난 7일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이 문제가 정의연의 회계 오류를 넘어 윤미향 전 이사장(더불어시민당 국회의원 당선인)과 가족을 둘러싼 각종 의혹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입니다.

정의연 부실회계 논란 쟁점 세 가지

정의연의 부실 회계만 따져보면 쟁점은 크게 세가지입니다. △기부금 등의 지출 내역 부실 기재 △윤 전 이사장 개인 계좌로 기부금 모집 △정부로부터 받은 국고보조금의 결산서 기재 누락 등입니다.

정의연은 국세청 홈페이지에 의무 공시한 '기부금품의 모집 및 지출 명세서'에 기부금 개별 지출의 수혜 인원을 99명, 999명, 9999명 식으로 적었습니다. 또 한해 동안 여러 곳에 지출한 모금사업 비용 3300여만원을 단 한 곳의 맥주집에 지출한 것으로 기록했습니다. 여성가족부 교육부 서울시 등으로부터 2016~2019년 지원받은 국고보조금 총 13억4000여만원중 8억여원을 공시에서 누락하기도 했습니다.

정의연의 부실 회계는 기업 회계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시민단체라는 비영리법인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정의연도 처음엔 회계 문제에 대한 지적에 "배후가 의심스럽다"는 둥 반발하다가 지난 11일 결국 "회계 미진에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연은 상세한 지출내역과 영수증 등의 공개는 여전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언론 감시소홀 반성부터 합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언론 감시소홀'에 대한 반성 고백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시민단체 등 비영리법인의 회계 불투명 문제는 간헐적으로 제기돼 왔습니다. 하지만 어떤 언론도 깊이 있게 그 실상을 파헤치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런 노력을 게을리했습니다.

시민단체를 포함한 국내 9600여개 공익법인은 전년도 재무제표를 매년 4월에 국세청 인터넷 홈페이지(홈텍스)에 공시하도록 돼 있습니다. 기자는 물론 일반 국민도 누구나 들어가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만약 시민단체의 회계 불투명에 문제의식을 갖고 조금만 파고 들어갔다면 이를 취재해 보도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용수 할머니의 정의연 윤 전 이사장에 대한 회견이 있은 뒤에야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저부터 반성하겠습니다.

주무 관청인 국가인권위원회는 나몰라라?

그렇더라도 이 대목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정부의 책임 부분입니다. 시민단체 등 공익법인의 결산내역을 공개토록하고, 국민 혈세까지 지원하면서도 사후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이런 문제가 터졌는지 철저히 따져 봐야 합니다.

정의연의 주무관청은 국가인권위원회입니다. 정의연의 사단법인 등록을 허가했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관리 감독 책임을 져야 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가인권위원회가 이와관련해 어떠한 유감 표명이나 해명을 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국세청, 공시 자료 들여다 보긴 했나?

시민단체의 지출 명세서 등 재무제표를 공시토록 하고 감시하는 곳은 국세청입니다. 국세청은 공익법인으로 하여금 재무제표를 공시하도록 하고, 이들의 결산내역을 검토해 오류가 발견되면 재공시하도록 지시합니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법인 총자산의 0.5%를 가산세로 물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세청은 정의연의 지출명세서 등이 부실하기 짝이 없는데도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언론의 집중 취재와 문제제기가 나오고 난 뒤에야 "결산서류 수정 공시 명령을 내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시민단체 등 공익법인의 재무제표를 홈페이지에 공시토록 해놓고 그 공시 내용을 국세청이 한번 들여다 보긴 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13억원 지원한 여성부 등은 지출명세 확인했나?

정의연에 지난 4년간 국고보조금을 지원한 정부 부처의 사후관리 책임도 규명해야 합니다. 정의연과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연의 전신이지만 현재 존속)은 여성가족부, 교육부, 서울시로부터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고보조금 13억4308만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2016년 1600만원, 2017년 1억5000만원, 2018년 4억3000만원, 지난해 7억4708만원 등입니다. 올해는 6억2200만원을 받을 예정입니다.

정부 예산 지원을 받아본 기업이나 단체라면 국고보조금의 결산이 얼마나 깐깐한지 잘 압니다. 저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언론진흥재단의 취재지원 사업비 1000만원을 지원받아 사용하고 결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땐 해외 취재때 쓴 지하철 요금 영수증까지 일일이 기재해야 했습니다. 이 회계가 얼마나 까다롭고 어려운지 서무직원 한 명이 아예 언론진흥재단에 가서 회계결산 보고 양식 교육을 받아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절차도 복잡하고 결산도 어려워 "다음부터는 정부의 취재지원 예산은 받지도 말자"는 얘기를 할 정도 였습니다.

과연 국고를 지원한 정부 부처들이 정의연의 지출 결산 보고서도 이렇게 깐깐하게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정의연과 해당 부처는 국고지원금에 대해 실적 및 정산 보고서를 정상적으로 제출했고, 받았다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성가족부 등이 국고지원금의 지출내역을 영수증과 대조해가며 확인했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만약 대조 확인을 하지 않았다면 국민 세금을 지원하고도 사후 관리를 부실하게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겁니다. 또 대조 확인을 제대로 했는데도 문제가 없었다면 그 내역과 영수증 등을 국민에게 모두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국고지원금이야 말로 국민의 돈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상세정보 투명 공개해야

지금은 관련 부처와 정의연이 부실 회계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사실 관계를 국민들 앞에 투명하게 밝히는 것만이 문제 해결의 유일한 길입니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 국세청, 여성가족부, 교육부, 서울시는 정의연의 관리 책임에 대해 입장을 분명히 하고 국고보조금 사용 내역 보고서 등을 즉각 공개하길 바랍니다. 그것이 정의연이 주장하는 실추된 명예를 조금이라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할 겁니다.

차병석 수석논설위원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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