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에 절도 30대 피의자…대기업 자회사 정직원 된 후 경찰·마트 사장 찾아 인사
빵 훔친 '청년 장발장'의 희망가…정규직 돼 돌아와 감사 인사
"이야! 얼굴빛이 달라졌네, 살도 많이 붙었구먼."
지난 8일 오후 광주 북부경찰서 형사과 문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한 남성이 양손에 비타민 음료 두박스 들고 두드렸다.

그는 A(36)씨, '청년 장발장'이라고 불리던 도둑이었다.

수일동안 굶주리던 A씨는 지난해 10월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마트에 침입해 빵 등을 훔치다 경찰에게 붙잡혔다.

허리를 다쳐 장애가 있었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수천만원 빚까지 있었으나 도움을 청할 곳은 어느곳에도 없었다.

결국 고시텔에 누워 배고픔과 홀로 싸우던 그는 마트 출입문을 부수고 들어가 훔친 빵과 라면 등을 허겁지겁 먹다 검거됐다.

"배고파서 그랬다"는 A씨에게 담당 강력팀장은 "젊은 사람이 뭐라도 살 궁리를 했어야지"라며 꾸짖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 희망이 없었습니다"고 말하고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닫았다.

희망이 꺾인 그을 먼저 보듬어 준 것은 경찰이었다.

조사를 마친 형사들은 그가 삶에 대한 의지가 희박함을 느끼고 상담부터 받도록 도왔고, 병원에 입원 시켜 몸과 마음을 치료받게 했다.

퇴원할 A씨를 위해 먹고 잘 곳을 수소문하고,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 신청을 하도록 관련 절차도 밟아갔다.

사회와 기업도 죄를 지은 그를 용서하고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물건을 도난당한 마트 사장은 그를 용서했고, 그의 사연을 기사로 접한 시민들의 돕고 싶다는 문의 전화도 빗발쳤다.

경찰이 A씨가 살아갈 방도를 찾은 사이 희소식이 하나 날아들었다.

대기업 포스코로부터 "청년 장발장에게 취업 기회를 주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함께 이력서를 써 제출한 형사들은 경찰차에 태워 그와 함께 면접장으로 갔고, 면접장 앞에서는 사시나무처럼 떠는 그를 다독였다.

그는 결국 포스코가 장애인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한 국내 1호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인 포스코휴먼스 수습사원으로 당당하게 합격했다.


A씨는 합격을 통보받고 "저를 도와준 이들이 실망하지 않게 노력하겠다"고 약속하고는 연고가 전혀 없는 포항으로 향했다.

그런 그가 6개월여만인 어버이날 광주를 다시 찾아왔다.

그동안 열심히 일한 A씨는 결국 수습 평가를 통과해 정규직 사원이 됐다.

정규직 사원이 되고 자신을 도운 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직접 드리려고 휴일 광주를 달려왔다.

A씨는 먼저 자신을 용서한 마트 사장을 찾아가 "도와주신 덕분에 다시 재기할 수 있게 됐다"고 고개를 숙였다.

마트 사장은 "열심히 노력해서 꼭 성공하시라"고 손을 잡고 격려했다.

경찰서에서는 몰라보게 달라진 그의 모습에 형사들이 더 놀랐다.

삐쩍 말라 곧 쓰러질 것 같던 몸에는 살과 근육이 튼실히 붙었고, 잿빛이던 얼굴에서도 환한 화색이 돌았다.

무엇보다 표정이 밝아졌고, 과묵하던 그는 활달하게 본래 성격을 되찾았다.

그는 "허리는 아프지만, 열심히 해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다"며 "정직원이 되고 저한테 도움 주신 분들에게 직접 인사드리려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운 강력·형사팀장은 "30여년 형사 생활 동안 이렇게 성공했다고 다시 찾아온 것은 처음이다.

자네가 우리게도 희망을 줬다"며 다독였고 "이제 돈도 열심히 모아 장가가야지"라고 덕담했다.

결혼 이야기에 "아직 꿈같은 이야기다"며 머리를 긁적이는 그의 얼굴에서 '희망을 잃은 장발장'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동안의 이야깃주머니를 풀고 다시 일어나는 그는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만 원권 5장을 꺼내 형사에게 건넸다.

지난해 절도 범행을 저지르고 동전 한 푼 없을 당시, 사비로 돈을 빌려준 강력팀장에게 빌린 돈을 갚고 싶었다는 말을 남기고 그는 다시 새 삶을 사는 포항으로 향했다.

빵 훔친 '청년 장발장'의 희망가…정규직 돼 돌아와 감사 인사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