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방지법' 관련 일각서 주장…동의없이 촬영·유통된 것만 시청까지도 처벌
[팩트체크] 보기만해도 처벌되는 '불법촬영물' 범위가 모호하다?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촬영하거나 유통한 '불법 성적 촬영물'을 시청만 해도 처벌하는 이른바 'n번방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조주빈의 숨은 공범들을 단속하고, 유사 범죄를 예방하는데 필요한 입법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국회는 지난달 29일 본회의를 열고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한 입법대책으로 마련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과 '형법·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 성폭력처벌법에는 13세 미만 아동과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시 처벌을 강화하고 음란 영상물을 이용한 협박죄를 새로 만든 내용도 포함됐지만, 세간의 관심은 불법 성적 촬영물을 단순히 소지하거나 시청만 한 경우에도 처벌하는 '14조 4항'에 집중됐다.

해당 조항은 '같은 법 14조 1항과 2항에 규정된 불법 성적 촬영물을 소지·구입·저장 또는 시청한 자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한다.

불법 성적 촬영물을 촬영하거나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만 처벌하던 기존 법조항에 불법 성적 촬영물을 소비한 자도 처벌하는 규정을 추가한 것이다.

공급자 뿐만 아니라 소비자도 처벌해 불법 성적 촬영물의 유통을 원천봉쇄하겠다는 취지다.

불법 성적 촬영물 시청까지 처벌하는 조항이 새로 마련된데 대해 'n번방 유사 범죄 예방에 필요하다'는 시각이 많지만 일각에서는 '과잉처벌' 주장도 나온다.

'국가가 개인의 성적(性的)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불만이 투영된 시각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불법 성적 촬영물의 의미가 애매모호해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수사하거나 기소할 수 있다"는 반응이 있었다.

또 "일본 av(성인물) 등 해외에서 합법적으로 촬영된 성적 영상물도 국내에서는 불법이어서 이를 시청만 해도 처벌된다"거나 "의도치 않거나 실수로 불법 성적 촬영물을 시청해도 처벌된다"는 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

[팩트체크] 보기만해도 처벌되는 '불법촬영물' 범위가 모호하다?

우선 불법 성적 촬영물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수사기관이 마음대로 사건을 수사하거나 기소할 수 있다는 지적은 합당할까? 이 같은 지적은 신설된 성폭력처벌법 14조 4항 조문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일부 네티즌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된다.

개정된 성폭력처벌법의 주요내용을 발췌·설명한 '의안전문'에는 14조 4항의 처벌대상이 '불법 성적 촬영물'이라고 기재돼 있지만, 실제 법조문에는 '14조 1항 또는 2항의 촬영물'이라고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다.

즉, 불법 성적 촬영물의 명확한 의미는 성폭력처벌법 14조 1항과 2항에서 찾을 수 있다.

14조 1항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한 촬영물'을 불법 성적 촬영물로 규정한다.

이어 14조 2항은 '촬영 당시에는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았어도 사후에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반포한 촬영물'도 불법 성적 촬영물로 규정한다.

두 개의 법조항에 걸쳐 규정된 까닭에 일견 복잡해 보이기는 하지만, 성폭력처벌법상 불법 성적 촬영물은 간략하게 '촬영대상자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촬영되거나 유통된 촬영물'이라고 정의된다.

대법원도 2015년 12월 성폭력처벌법 14조 1항과 2항이 규정하는 불법 촬영물의 범위에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거나 의사에 반하지 않게 촬영됐더라도 이후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된 촬영물"도 포함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를 뒤집어 해석하면 적법한 제작 시스템 속에서 배우의 동의 아래 촬영·유통된 영상물도 소지하거나 시청하면 처벌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셈이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4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신설된 성폭력처벌법 14조 4항은 n번방 사건과 같이 피해자의 동의 없이 영상물이 무분별하게 복제, 배포돼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라며 "당사자가 촬영과 유통에 동의한 영상물을 소지·시청한 경우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팩트체크] 보기만해도 처벌되는 '불법촬영물' 범위가 모호하다?

그렇다면 당사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되거나 유통된 불법 성적 촬영물을 의도치 않게 시청하거나 실수로 시청한 경우에는 형사처벌 대상이 될까? 즉 인터넷 등에 게시된 '불법 성적 촬영물'을 불법 촬영물이 아닌 것으로 알고 시청했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실수로 시청한 사람도 처벌이 되냐는 것이다.

심지어 '나쁜 마음을 먹고 특정인에게 불법촬영 영상물을 발송해 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엄밀히 말하면 성폭력처벌법 14조 4항은 '범죄를 저지른다'는 인식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하는 '고의범' 규정이어서 불법 성적 촬영물이라는 것을 모르고 시청했거나 이를 알 수 있었는데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실수로 시청한 것이 입증된다면 처벌할 수 없다.

불법 성적 촬영물이라는 점을 사전에 인식한 뒤 시청을 시작했거나, 시청하던 중간에 불법 성적 촬영물이라는 점을 알게 된 뒤에도 계속해 시청한 경우에만 고의범으로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송득범 법무법인 현 변호사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14조 4항은 법문상 고의인 경우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별도의 과실 규정이 없으므로, 과실범은 처벌받지 않는다"며 "의도하지 않고 시청하거나 과실로 시청한 경우까지 처벌받는다는 것은 해당 조항에 대한 오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다만 보통의 경우 개인적이고 은밀한 영역에서 이뤄지는 음란물 시청과 관련해 고의성 유무를 법적으로 가르는 기준이 모호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는 만큼 후속 입법 또는 판례정립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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