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건물 앞 안내판에 변호사·법무법인의 명판 20여 개가 빼곡히 붙어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28일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건물 앞 안내판에 변호사·법무법인의 명판 20여 개가 빼곡히 붙어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100년→8년→5년.’

국내에 등록된 변호사가 1만 명씩 늘어나는 데 걸린 기간이다. 1906년 1호 변호사가 탄생해 2006년과 2014년, 2019년에 각각 1만 명과 2만 명, 3만 명을 넘어섰다.

변호사 3만명 시대…각자도생만이 살길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휴직자 등을 제외하고 활동 중인 변호사는 현재 2만7900여 명이다. 여기에 이달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1768명이 가세하면 올해 사실상 변호사 3만 명 시대가 열린다.

변호사 수는 늘지만 ‘전통적 먹거리’인 송무(소송) 시장이 정체되면서 변호사들의 경쟁은 가열됐다. 전체 소송 건수는 2014년 650만844건에서 2018년 658만5580건으로 4년간 1.3%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최근 3년간은 소송이 줄어드는 추세다. 직접 영업을 뛰고 출혈경쟁을 벌이면서 생계를 걱정하는 변호사들도 낯선 얘기가 아니다. 세무·등기 등 다른 업무에 관심을 보이는 변호사가 늘어 세무사 법무사 등 인접 직업군과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리걸테크(legal+tech)’는 변호사들의 입지를 더 좁히고 있다. 온라인 기반 법률상담 플랫폼인 로톡의 누적 방문자는 1300만 명을 넘어섰다. 딥러닝 기술을 바탕으로 판례와 법령 등을 분석해주는 인공지능(AI)도 상용화돼 법률 자문 등의 업무를 대체하고 있다. 개인들이 변호사 도움 없이 재판을 하는 ‘셀프소송’이 확산되고, 법률서비스료가 지속적으로 낮아지면서 변호사 시장은 더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소송시장 정체에 1만원짜리 상담도…
젊은 변호사들 "생계가 걱정"


사무장이 알아서 사건을 수임해오고 특별한 홍보나 마케팅 없이도 수억원대 연봉을 가져가던 변호사의 이미지는 옛말이다. 요즘 젊은 변호사들은 인터넷에서 1만원짜리 전화상담을 하며 직접 고객을 끌어모은다. 민사사건 착수금은 10년 새 반토막이 났다. 불황 속 가격 경쟁이 치열해진 탓이다. ‘변호사 3만 명 시대’에 진입하면서 개인 변호사는 생존을 위해 각자도생하고 있다. 이에 비해 대형 로펌은 몸집을 불리면서 변호사업계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1분 만에 마감된 ‘복대리인 구인’

변호사 3만명 시대…각자도생만이 살길
28일 대법원에 따르면 2014~2018년 전국 법원에 접수된 전체 소송건수(민·형사·행정소송)는 650만 건이다. 같은 기간 변호사는 2만700여 명에서 2만8100여 명으로 7000명 이상이 새로 배출됐다. 사실상 국내 송무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셈이다.

청년 및 개인 변호사 위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A변호사는 최근 서울에서 열리는 한 재판의 ‘복대리인’을 구하는 글을 대한변호사협회 사이트에 올렸다가 1분 만에 10명에게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 복대리인이란 변호사가 재판이 여러 개 겹치는 등 사정이 생겼을 때 자신을 대신해 법정에 출석하는 변호사를 뜻한다. A변호사는 “복대리인은 건당 10만~15만원을 받는데 왔다갔다 이동시간을 포함하면 반나절에서 하루를 버려야 한다”며 “일감이 없는 변호사들이 하루 공치느니 복대리인 업무를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감은 줄어드는데 수임료까지 하락했다. 올해 9년차인 B변호사는 “활동 초기만 해도 400만~500만원대였던 일반 민사사건 최소 수임료가 요즘 200만원대까지 내려갔다”며 “시간당 30만원을 받던 비용도 받지 않고 상담해 주는 변호사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소형 로펌에서 근무하는 경력 3년차 C변호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는 “(전관이 아니라도) 형사사건 수임료가 건당 500만~1000만원은 됐는데 요즘은 200만원 이하로 받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한 달에 한 건 수임하기도 힘든데 200만원을 번다고 하면 세금 등을 떼고 정말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객 확보를 위해 이색 서비스를 앞세우는 변호사도 있다. 서초동의 개업변호사 D씨는 최근 무료로 내용증명 업무를 해주는 서비스를 내세웠다. 당초 30만원가량 받던 업무다. 그는 “변호사협회 차원에서 상담은 유료로 진행하라고 권장하지만 무료 서비스를 받은 고객은 향후 송사에 휘말리거나 지인에게 변호사를 소개할 수 있어 잠재적 고객”이라고 말했다.

다만 D변호사는 “비용을 받지 않다 보니 의뢰인들로부터 ‘변호사 쇼핑’을 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며 “여러 로펌을 돌며 기본적인 설명을 듣고 온 의뢰인들이 사건을 맡기기 전 가격 흥정부터 할 땐 기분이 썩 좋진 않다”고 털어놨다.

대형 로펌은 오히려 성장세

공공기관이나 기업에 취직하는 걸 선택하는 변호사도 많아졌다. 다만 몸값은 예전과 다르다. 농협은행은 최근 변호사들을 일반 대졸사원과 같은 급으로 채용해 화제가 됐다. 서울시 역시 변호사 자격 소지자를 과거 6급에서 7급으로 낮춰 채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대한법률구조공단이 변호사를 채용하는 과정에선 비정규직보다 연봉이 2000만원가량 낮은 정규직에 더 많은 지원자가 몰리기도 했다. 업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돈을 덜 받더라도 안정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형 로펌은 오히려 성장세다. 김앤장 광장 태평양 등 6대 대형 로펌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0% 이상 늘어나 역대 최고 수준이다. 한 대형 로펌은 최근 3년간 소속 변호사 수가 30%나 늘었다. 이들은 변호사 수 증가가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다양한 배경과 능력을 갖춘 변호사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훌륭한 인재를 선택할 후보군이 넓어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변호사들은 생존을 위해 더 ‘전문화’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변호사의 전문분야 등록 신청 건수는 최근 3년 새 2.4배 이상 늘었다. 변호사들은 이혼·형사·도산 등 61개 분야 중 최대 2개를 선택해 자신의 전문분야로 등록하고 자신을 ‘△△ 전문변호사’라고 광고할 수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법률시장이 호황이던 시절엔 민·형사, 가사, 행정 등 구분 없이 사건 의뢰가 왔기 때문에 너무 한 분야의 전문성만 내세우면 다른 분야는 잘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요즘은 변호사들이 특정 분야 전문가임을 내세우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인혁/남정민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