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사진=연합뉴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사진=연합뉴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첫 논문을 냈다. 정 본부장은 해당 논문을 통해 서울 구로구 콜센터에서 발생한 대규모 집단 감염 당시의 역학조사와 방역 과정 등을 정리했다.

26일 미국 질병통제센터(CDC)가 발행하는 의학학술지 '신종 감염병(Emerging Infectious Diseases)' 최신 호(온라인판)에 따르면, 정 본부장팀(제1저자 박신영)은 지난달 구로구의 한 빌딩에서 발생한 '콜센터 집단 감염' 관련 방역 내용을 담은 논문을 전 세계 전문가들에게 공개했다. 정 본부장은 책임저자(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렸으며 논문에는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 등의 방역 담당자들도 함께 참여했다.

이 논문에서 연구팀은 콜센터 건물에 근무·거주·방문했던 1143명 중 97명이 코로나19로 확진됐으며, 이중 최초 확진자가 확인된 11층의 발생률이 전체 건물 평균 8.5%보다 크게 높은 43.5%에 달했다고 밝혔다.

97명의 확진자 중에는 89명(91.7%)이 조사 시작 당시부터 증상이 있었으며, 4명(4.1%)은 처음에는 증상이 없다가 격리 기간(14일)에 증상이 발현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4명(4.1%)은 격리 기간이 끝날 때까지 관련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들 무증상 감염자의 경우 가족 접촉자 17명 중 2차 감염자가 한 명도 없었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무증상 감염 상태에서의 실제 전염성이 정확히 진단되지 않았거나, 방역당국이 시행한 고강도 자가격리조치 등이 2차 감염 확산을 막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정 본부장은 이와 관련해 지난 22일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도 이 같은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그는 "무증상 확진자의 접촉자 중 코로나19 양성으로 확인되는 사례는 아직 그 수가 많지 않고, 있어도 굉장히 소수에 국한한다"면서 "무증상기의 전파력에 대해서는 다양한 조사가 진행돼야 파악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 본부장팀은 이번 논문에서 첫 환자 발생 이후에 이뤄진 신속한 방역 조치 과정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정 본부장팀은 논문을 통해 방역 당국은 지난달 9일 콜센터에서 코로나19 환자 발생이 보고된 직후 건물을 폐쇄하는 한편 역학조사를 벌여 건물 근처에서 5분 이상 머물렀던 사람들에게 총 1만6628개의 문자를 전송하는 등 신속한 조치에 나섰다. 이 문자에는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고, 가장 가까운 검사기관에 가서 코로나19 검진받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방역 당국은 휴대전화 위치 데이터를 활용해 이들의 이동 상황을 추적했다.

이들은 논문에서 "건물의 엘리베이터와 로비에서 서로 다른 층에 있는 작업자들 사이에 상당한 상호 작용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코로나19의 확산은 거의 11층으로 제한됐다"면서 "콜센터와 같은 고밀도의 작업 환경이 코로나19의 확산에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정 본부장팀은 이와 함께 11층 콜센터에서 발생한 코로나19 환자 대부분이 건물 한쪽 면에서 다른 감염자와 마주하거나 나란히 앉은 채 일하다가 감염됐음을 보여주는 그래픽도 논문에 첨부했다. 방역 당국은 콜센터 업무 특성과 밀집된 환경 영향으로 비말에 의한 바이러스 전파가 상당 기간 반복된 것으로 진단했다.

이들은 또 이번 콜센터 집단 감염에 대한 한국의 방역사례가 취약 계층의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press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