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간 이권 다툼으로 전국 건설현장이 잇달아 멈춰서고 있지만 건설현장 관리를 맡고 있는 국토교통부와 노사관계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불법이 자행돼도 속수무책이다 보니 노조의 채용 강요와 공사 방해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노·사·정 갈등해소센터 '유명무실'…9개월간 불법 신고 한 건도 없어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토부, 한국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대한건설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등이 참여하는 ‘건설산업 노·사·정 갈등해소센터’에 지난해 7월 이후 접수된 신고는 한 건도 없다. 이 센터는 불공정 관행과 노사 간 분쟁사항에 대한 신고를 받아 노·사·정 협의를 통해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자는 취지로 출범했다. 센터가 설립된 지 9개월가량 지났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 들어서는 센터를 통해 노·사·정이 모두 모인 회의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식적인 신고 통로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사업주들이 노조 눈치를 보느라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고용부가 도입한 채용절차법 개정안도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지난해 7월 고용부는 채용을 청탁·강요하다 적발되면 최고 30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하는 내용의 채용절차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건설현장에서는 각급 노조가 서로 자기 조합원 채용을 위해 ‘밥그릇 전쟁’을 하는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법 시행 이후 건설노조의 채용 강요 관련 신고는 13건. 하지만 과태료가 부과된 사례는 한 건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부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와도 다른 공사장에서 ‘항의파업’을 하는 등 노조의 보복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업주가 많다”며 “일부 사업주는 조사 과정에서 강요가 없었다고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안이한 태도에 건설업계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경찰과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해도 단속과 처벌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건설업계 차원에서 건설노조의 불법·부당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을 촉구하는 건의서를 정부와 국회 등에 제출했지만 바뀐 게 거의 없다”며 “매년 반복되는 노조 갑질 문제에 회사만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로 건설 일자리가 줄어들면 건설노조 간 채용 다툼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고용부, 경찰 등 정부 관계부처와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