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불러일으킨 ‘현금 살포’ 경쟁에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재난기본소득’ 명목으로 가구당 100만원이 넘는 돈을 조건 없이 지급하는 지자체가 나오자 “왜 우리 지자체는 아무런 얘기가 없느냐”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이에 더해 오는 15일 21대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후보들까지 나서서 공개적으로 재난기본소득을 요구하기 시작하자 재정이 취약한 지자체들은 더 난처한 상황이 됐다.
"기본소득 안 주려면 시장직 내려놔라"…지자체 '몸살'
민원글로 도배된 지자체 게시판

6일 구리시 홈페이지 시민의 소리 게시판에는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게시글이 여러 개 올라왔다. “재난기본소득 지급 결정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내용부터 “재정이 부족해 지급이 어렵다는 변명을 할 거면 시장직을 내려놓으라”는 원색적인 비판까지 이어졌다. 남양주시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근 1주일 사이에 올라온 게시글 대부분이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구리시와 남양주시는 경기도 내 31개 기초자치단체 중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결정하지 않은 마지막 두 곳이다. 나머지 29곳은 적게는 1인당 5만원부터 많게는 40만원까지 조건 없이 재난기본소득을 주기로 했다. 구리와 남양주 시민들은 경기도 내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지원금을 요구하고 있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재난기본소득과 관련해 단체로 시청에 전화해 민원을 제기하자는 글까지 올라왔다. 남양주시 관계자는 “다짜고짜 ‘왜 우리 지역은 지원금을 주지 않느냐’며 화를 내는 악성 민원 전화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1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앞두고 있는 국회의원 후보들도 앞다퉈 지자체 압박에 나섰다. 정정순 청주 상당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3일 성명을 내고 “충청북도와 청주시는 정부 지원 외에 자체적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충청북도는 정부가 추진하는 긴급재난생활비에 필요한 예산을 분담하는 대신 도 자체적으로 추진하던 재난지원금은 재정 상황을 감안해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재정 자립도는 악화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지자체의 평균 재정 자립도는 51.4%로 전년 대비 2%포인트 하락했다. 2015년(50.6%)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서울(82.2%)과 세종(72.7%) 등 7개 지자체를 제외한 10곳은 지난해 재정 자립도가 50%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망설이고 있는 구리시와 남양주시의 재정 자립도는 각각 35.6%, 34.7%에 불과하다. 모든 지자체가 현금 복지 경쟁에 나설 만큼 재정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피해와 관계없이 지자체별로 지원금도 천차만별이다. 실제로 코로나19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대구의 가구당 최대 지원금은 190만원에 그쳤지만 포천은 가구당 최대 지원금이 28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시는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을 소득 하위 70%에 지급하기로 하자, 나머지 소득 상위 30% 시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하면서 논란이 됐다. 인천시민들은 “같은 수도권인 서울, 경기는 중앙정부와 광역자치단체의 지원금을 중복으로 주는데 인천은 그렇지 않다”며 인천시에 추가적인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인천시민이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지원받는 금액은 4인 가구 기준으로 최대 100만원이지만 이웃인 경기 부천시는 하위 소득 70% 이하 4인 가구는 최대 160만원의 지원금을 받는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무차별 현금 살포 대책은 실효성이 떨어지고, 재정을 낭비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지자체장들이 재정 상황은 감안하지 않고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앞다퉈 현금을 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관/인천=강준완 기자 pjk@hankyung.com